온실가스 감축 후퇴?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구조가 문제”

입력 2015-06-14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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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필리핀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강조하며, 오는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릴 21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세계 지도자들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오는 12월 열리는 파리회의에 참석해서 어깨를 펴지 못할 공산이 커졌다. 유엔(UN)에 제출해야 하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안을 발표했지만, 당초 목표치보다 낮게 설정돼 후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산업계를 지나치게 의식한 것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일각에서는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구조로 인해 ‘2020년 BAU 대비 온실가스 30% 감축 목표’ 달성은 애초에 불가능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정부의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 시나리오

14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유엔에 제출할 2020년 이후 기후변화 대응계획(INDC)은 신기후체제(Post-2020) 출범 이후 꼭 지켜야 하는 약속이다.

정부가 제시한 감축목표안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배출전망치(BAU) 대비 △14.7%(1안) △19.2%(2안) △25.7%(3안) △31.3%(4안) 감축하는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량으로 계산하면 5억8000여만톤에서 7억2000여만톤이다. 하지만 저탄소 녹색성장을 내걸었던 이명박 정부 때 국제사회에 약속한 온실가스 배출 목표치인 2020년 5억4000여만톤 보다 후퇴한 것이 된다.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페루 총회 기조연설에서 “예외 없는 모든 국가의 감축행동 참여를 강조하면서 각국 상황과 역량을 반영해야 하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다소비 산업구조 때문에 경제 성장을 위해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를 피할 수 없는 실정이다. 기존 목표를 고수할 경우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내놓은 경제적 영향 분석자료에 따르면 감축폭이 적은 1안을 따를 경우 2030년 국내총생산(GDP)은 0.22% 감소하고 가장 많은 4안이면 0.78%까지 줄어드는 것으로 예측됐다.

한국은 에너지 해외 의존도가 97%에 달하고 세계 여덟 번째 석유소비 대국이면서, 2012년 기준 온실가스 배출총량 세계 7위 국가다.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율은 OECD 중 1위다. 또한 2014년 기준 GDP 규모 세계 13위인 주요 경제국으로 상당한 감축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럼에도 해외자원개발이나 에너지소비효율, 대체 에너지 개발보급 등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에너지 다소비 산업구조를 가진 우리나라는 남보다 한발 빠르게 에너지 고효율 저탄소사회로 전환하지 않으면 미래세대에 큰 부담을 지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안에 대해 산업계와 시민사회의 온도차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산업계는 정부의 감축안이 경제를 위축시킬 뿐 아니라 고용 문제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030년 온실가스 BAU가 너무 적다고 주장했다.

유환익 전경련 산업본부장은 “무리한 온실가스 감축으로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시민사회 단체는 한국의 위상에 맞지 않게 너무 소극적이라며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경운동연합은 “(정부 온실가스 감축안은) 2020년 목표 배출량보다 최소 8%늘어나고 2005년 기준으로는 최대 30%까지 늘어나는 수치”라며 “선진국은 물론 중국보다도 뒤떨어진 목표”라고 지적했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안병옥 소장은 “연말 파리의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한국이 새 기후변화체제에 무임승차하려 한다는 유감 표명이 잇따를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기후 변화로 인한 집중호우, 폭설, 가뭄 등이 더 이상 이변이 아니라 일상화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만큼, 보다 근본적으로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다소비 산업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럽의 경우는 이미 온실가스 배출량이 정점을 찍고 줄어들고 있는 추세라 상대적으로 감축이 수월하다. 미국은 셰일가스 생산량 확대로 발전 부문에서 온실가스 배출이 자연스럽게 30% 이상 감축될 것으로 보인다.

스위스는 기준연도 절대량 방식으로 2030년까지 1990년 배출량(5억3300만톤) 대비 50% 감축 목표를 잡았다. EU는 2030년까지 1990년 배출량 대비 최소 40%를 감축키로 했다. EU는 예전에 발표한 2020년 목표인 1990년 대비 20% 보다 더 강화한 목표를 제출했다.

개도국인 멕시코는 BAU 대비 방식으로 2030년까지 25% 감축 목표를 내놨다. 한국보다 총 배출량이 많은 국가들 중 일본은 아직 제출하지 않았지만, 2030년까지 2013년 대비 26% 감축하는 안이 유력하다.

유정민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연구교수는 “온실가스 감축목표 수립 과정을 보다 투명하고 참여적으로 해야 한다”면서 “감축 목표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 과정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정부는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거친 후, 최종안을 확정해 이달 말까지 유엔에 감축목표를 제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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