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성인유치원 다니고 싶어?

입력 2015-05-08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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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로버트 풀검(Robert Fulghum·1939년생)은 미국의 목사이며 유명한 저술가다. 그가 1988년에 낸 책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다 배웠다’는 거의 2년간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번역돼 많이 팔렸다.

그는 네 자녀로부터 아홉 명의 손자를 얻고, 화가인 아내와 함께 살고 있는데 얼마든지 글감이 널려 있을 것 같다. 우리 나이로 올해 벌써 77세이니 할아버지인 건 맞지만, 요새 70대가 얼마나 젊은가?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는 일흔다섯 된 노인이 총질을 한 적도 있지 않나? 정말이지 유치원에서 배운 대로, 아니면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의 생각대로 세상을 성실하고 천진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달포 전쯤 미국에 성인유치원이 생겼다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다. 뉴욕의 브루클린에 있는 ‘프리스쿨 매스터마인드(Preschool Mastermind)?’라는 곳인데, 21세 이상의 성인 남녀 6명(그동안 원생이 좀 늘었겠지?)이 매주 화요일에 모여 놀이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낮잠도 자고 잠옷 차림으로 파티도 하고 율동도 하며 즐겁게 노나 보다. ‘아이들’은 노는 게 공부고 잘 놀아야 나중에 잘 살 수 있으니까.

유치가 무슨 뜻인지 따져보자. 유(幼)는 힘이 작다, 어린아이, 사랑스럽다는 뜻이고 치(稚)도 어리다는 뜻이다. 특히 치는 어린 벼를 말한다. 그러니 유치는 어리고 힘이 모자란다는 뜻이지만 미숙하다, 어리석다는 뜻으로만 생각하기 쉽다. 어쨌든 미숙한 걸 보완하고 어리석은 걸 깨우치는 데 성인유치원의 의미가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런데 나를 포함해서 정말 유치원에 다니며 새로 배우고 행동을 교정해야 할 사람들은 너무도 많다. 나는 아파트 7층에 사는데 같은 구멍(이 말 말고 다른 거 없나?)에 사는 사람들 중에서 꼴불견이 몇 명 있다. 특히 어떤 녀석은 단 둘이 엘리베이터에 탔는데도 인사는커녕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내가 먼저 인사를 하면 되지 않느냐고? 그게 안 되니까 나도 유치원 가야 한다). 또 한 사람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사람이 내린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무조건 밀고 들어온다. 그래서 나와 두 번이나 입을 맞출 뻔했다. 아들 뻘인 녀석 하나는 내 앞집에 사는데 절대로 인사를 하지 않는다. 한겨울에도 슬리퍼 짝 질질 끌고 나가 아파트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들어온다. 그 녀석만 엘리베이터에 탔다 하면 담배 냄새가 견디기 어려울 정도다.

이런 거 일일이 열거하면 한도 끝도 없다. 지하철에서, 길거리에서, 화장실에서, 동네에서 정말 유치원부터 다시 다녀야 할 아저씨 아줌마들이 너무도 많다.

며칠 전 어느 신문에 ‘설명병’에 관한 기사가 났던데, 이런 병에 걸린 남자들도 유치원에 다녀야 한다. 여성이 뭘 모른다고 생각해 시시콜콜 설명하면서 아는 체하는 남성을 일컫는 말이 맨스플레인(Mansplain)이다. 남자 ‘맨(man)’과 설명하다 ‘익스플레인(explain)’을 합성한 단어다. 2010년 뉴욕타임스 ‘올해의 단어’로 꼽힌 데 이어 2014년에는 옥스퍼드 온라인 영어사전에 실렸다. 호주에서도 2014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됐다고 한다.

요즘 아이들이 잘 쓰는 말에 ‘낄끼빠빠’라는 게 있던데, 제발 낄 데 끼고 빠질 때 빠져! 정말 알아야 할 걸 다시 가르쳐주는 성인유치원이 우리나라에서도 번창했으면 좋겠다. fused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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