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휴머니즘을 실천하는 기술

입력 2015-01-23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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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

주세페 베르디(1813~1901)는 조국인 이탈리아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작곡가다. 인간적인 매력과 보편적 인류애의 감동이 살아 있는 대중적 오페라를 많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어린 자녀와 아내를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야 했던 슬픔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았던 베르디는 ‘나부코’,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 등 숱한 명작을 작곡했다.

베르디가 인기와 존경을 한몸에 받는 이유는 또 하나 있다. 바로 주변에 있는 어려운 이들의 처지에 관심을 갖고 돌아볼 줄 알았다는 점이다. 그는 88세로 세상을 떠나기 2년 전 거액의 사재를 털어 밀라노에 ‘음악가를 위한 휴식의 집(Casa di Riposo per Musicisti)’을 지었다. 젊었을 때 빛을 보지 못한 음악가들이나 은퇴 후 재정적으로 넉넉지 않은 음악가들이 무료로 지낼 수 있는 안식처로, 1902년 정식 개소된 후 지금까지도 운영되고 있다. 베르디가 이 쉼터를 자신의 가장 자랑스러운 작품이라며 자랑스러워했다는 걸 보면, 그는 가슴이 따뜻한 휴머니스트였음이 분명하다.

베르디가 인간애를 바탕으로 100년이 넘는 지금까지 많은 음악가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것처럼, 누구나 자신의 재능을 활용해 나눔의 정신을 실천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기술자들은 축복받은 사람들이라 할 것이다. 특히 기술은 따뜻한 공동체를 만드는 데 있어서 사회 구성원들에게 미치는 파급 효과가 큰 편이기 때문이다.

일례가 눈이 잘 안 보이는 사람들이 손으로 시간을 읽을 수 있는 브래들리 시계다. 이 시계는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출신의 김형수씨가 고안해 낸 것이다. 그의 비즈니스 아이디어는 친구의 불편을 덜어주려는 배려에서 시작됐다. 한 친구가 수업 시간에 자꾸 시간을 물어보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그 친구가 시각장애인이라는 데에서 의문이 풀렸다. 버튼을 누르면 음성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를 갖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수업을 방해하기 싫어서 일부러 조용히 시간을 물어봤던 것이다.

브래들리 시계는 기존의 보통 시계에 자석 기능만 추가한 것으로, 별다른 복잡한 장치가 들어있지도 않다. 작년 연말부터 국내에서도 판매가 시작된 이 시계는 디자인이 예뻐 시각장애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장애인 친구를 위해 시작한 일이 다른 이들에게도 효용을 가져다주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이렇게 사소한 아이디어이지만 큰 보탬이 되는 기술과 발명품들을 ‘착한 기술’, ‘따뜻한 기술’, ‘적정기술’이라는 다양한 이름으로 부른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도 기술을 활용한 통 큰 나눔을 실천하는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을 상대로 ‘적정 산업기술’을 보급하는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그것이다. 적정 산업기술은 수요자 관점에서 설계하고 개발해서 개도국의 소득 창출을 유도하는 산업기술 제품을 말한다. 무조건 고사양의 제품보다는 현지 사정에 맞춰서 사양을 적당히 다운그레이드하여 가격을 조정하는 경우가 많다.

KIAT는 현재 미얀마에 미생복합물을 활용해 비료로 만드는 기계, 펠렛을 제조해 연료로 활용하는 기계 등을 보내서 현지인들이 값싸고 편리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특히 우리 중소·중견기업들이 이 기계들의 제조를 직접 맡으면서 자연스럽게 현지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에, 일거양득이라 할 수 있다. 올해는 미얀마 외의 다른 국가에도 적정 산업기술 나눔이 확산되도록 활발하게 뛰어볼 참이다.

전화, 자동차, 인터넷 등 수많은 발명품과 개발품들은 지금껏 역사의 흐름을 뒤집고, 세상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크고 위대한 발명만 의미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기술 자체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깃들어 있는 휴머니즘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기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은 그 뒤에 불편함을 개선하려는 욕망, 모든 이들이 삶의 질 개선을 함께 누리자는 아이디어가 있었기에 가능했기 때문이다. 올해는 효용 가치가 높은 따뜻한 기술들이 시장에 많이 나와 경제 공동체에 온기를 불어넣기를 기대한다. 특히 그 주인공이 우리의 중소·중견기업들이라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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