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지하철 생활자의 추억

입력 2024-11-21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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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 소설가

내가 처음 서울의 지하철을 타본 것은 지금부터 꼭 48년 전인 1976년의 일이었다. 서울 지하철이 완공된 지 3년 되던 해였다. 그때 나는 강릉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학생이었고, 서울에 무슨 시험을 보러 올라와 친구들과 또 우리를 인솔하는 선생님과 함께 ‘동대문’에서 ‘시청앞’까지 그것을 타보았다. 지금 서울지하철 1호선 구간이다.

기찻길의 터널은 산을 통과할 때만 뚫는 줄 알았는데, 지금 우리가 지나가는 이 굴속 바로 위에 자동차가 다니는 길이 있고 집이 있고 동대문과 남대문 같은 국보와 보물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애석하게도 선생님이 단체로 표를 끊어 요금이 얼마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 촌사람이 본격적으로 지하철을 생활의 한 부분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지방에서 대학을 다닌 다음 나중에 결혼해 서울에 와 살 때였다. 직장은 마포였고, 살고 있는 전셋집은 광운대역 부근이었다. 그때는 한 달 정기권을 끊어 매일 아침 광운대역에서 서울역까지 전철을 타고, 마포에는 아직 전철이 없던 시절이어서 거기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회사로 갔다.

그때 직장을 다니며 신인작가로 막 등단했다. 작가로 독서량도 적지 않아 매달 새롭게 발표되는 각종 문예잡지의 신작 중단편소설을 지하철에서 거의 다 읽어냈다. 광운대역에서 서울역까지의 거리는 단편소설 한 편 읽을 수 있는 거리와 시간이었다. 왕복하면 하루에 두 편 지하철 안에서 독서를 했다.

이따금 신문을 읽기도 했다. 그것은 출근할 때보다 퇴근할 때의 일인데, 지금은 대부분의 신문들이 조간으로 발행되지만, 그때는 조간보다 석간이 더 많던 시절이었고, 지하철에서 신문을 파는 사람들도 그냥 신문을 파는 것이 아니라 신문을 자기들 나름으로 편집해서 팔았다.

이렇게 말하면 얼른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르겠다. 5공 독재정권 치하였다. 군사정권은 일차적으로 언론과 학원을 통제했고, 그래서 대부분의 신문이 이 신문이 저 신문 같고 저 신문이 이 신문 같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 정작 ‘신문에 날 만큼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나 일’들은 신문 앞머리에 오르지 못하고 한 귀퉁이에 밀려 아주 조그맣게 있는 듯 없는 듯 났다. 그러면 지하철에서 신문을 파는 사람들이 1면의 톱뉴스 대신 조그만 그 기사를 빨간색 사인펜으로 테두리를 쳐서 ‘오늘 신문에 이렇게 중요한 것이 났다’ 하는 식으로 신문을 팔았다.

아무튼 광운대역에서 서울역까지 7년간 전철로 통근하던 시절 전철은 나에게 땅속을 달리는 독서실이었다. 전철 안에서의 독서 분량만 해도 한 달에 네댓 권은 족히 넘을 것이다. 광운대역 부근에 살다가 은평구로 잠시 이사를 할 때 내가 가장 아쉬워했던 것도 교통편 자체가 아니라 오가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에 대해서였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신도시 일산이다. 이곳에 들어온 지 30년이 되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오직 글만 쓰고 사는 전업작가가 되면서 일산으로 들어왔다.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이나 두 번은 이런저런 일로 서울로 나가게 된다. 그때 이용하는 것도 지하철이다.

집에 자동차가 있어도 늘 지하철로 다니는 게 편했다. 그게 버릇이 되어 50세부터는 자동차에서도 거의 손을 놓았다. 아직 면허증을 가지고 있지만 이제 운전을 하지 않으니 이것도 조만간 반납할 생각이다.

요즘 전철을 타면 책을 읽는 사람이 거의 없다. 책을 펴든 사람이 나 혼자일 때도 많다. 책도 신문도 핸드폰 안에 모두 들어있어 사람들마다 그것을 보고 다닌다. 10년 후에는 또 어떤 모습의 세상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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