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는 청년 집도 없고 결혼도 미뤄
세율 대폭 낮춰 자산 선순환 유도를
우리나라에는 ‘부의 대물림’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정서가 강하다. 부모가 모은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이 사회 불평등의 근원이라고 간주한다. 흔히 말하는 ‘금수저 흙수저’ 논란은 어떤 부모에게 태어나 얼마나 부모 덕을 보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는 자조적 표현이다.
이런 연유로 우리나라 상속세는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높다. 상속세 최고세율은 50%이며, 대주주의 주식 상속에 대해서는 20% 할증이 가산되어 60%까지 올라간다.
현행 상속세제는 1999년에 정해져 지금까지 변함없이 시행되어 왔다. 당시에 최고세율을 45%에서 50%로 올리고 최고세율 과세표준 구간을 50억 원 초과에서 30억 원 초과로 낮추었다. 과세표준 구간을 낮추고 상속세율을 올린 것은 부자의 상속에 대한 ‘징벌적 증세’를 상징한다. 그동안 몇 차례 상속세율 인하나 과세표준 구간 상향을 포함한 상속세 개편안이 논의되었으나 ‘부자 감세’라는 반대 여론에 부딪혀 좌초되었다.
1990년대 상황에 맞춰 수립된 상속세제가 현재의 경제규모와 국민자산을 반영하지 못하며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다. 특히, 부동산 가격의 상승으로 자산가치가 증가하여 상속세 과세 대상이 중산층으로 확대되었다. 상속세 공제한도가 10억 원인데 서울의 아파트(193만1000가구) 중 10억 원이 넘는 비중이 40%에 이른다. 전국적으로 과세 대상인 아파트 비중이 2024년 5.9%에서 10년 후인 2035년에는 32.6%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부자가 아닌 일반 국민도 상속세 부담을 걱정해야 하는 형편이 되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고령화 추세에 따라 상속 연령도 고령화하여 80~90대의 부모가 60~70대 자녀에게 자산을 상속하는 ‘노노(老老)’ 상속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80세 이상 피상속인에게 상속받아 상속세를 납부한 비중이 2010년 33%(1344건)에서 2022년 52%(1만9506건)로 늘어났다. 70대 피상속인까지 합하면 ‘노노상속’의 비중은 77%로 급증한다. ‘노노상속’은 자산의 고령화를 가져와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키고 경제 활력을 저하하는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고령화가 진행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는 ‘노노상속’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자산 대부분이 노인층에 쏠리며 청년층은 자산 결핍에 시달리는 부의 세대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돈이 없는 청년들은 주택 장만을 못 하여 결혼도 못 하고 아이도 낳지 않는다. 출산율이 저하되어 인구가 감소하는 문제의 원인이 상속세제에 있는 것이다.
일본의 최고 상속세율은 55%로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높은 수준이었다. 일본 정부는 노인의 자산이 청년층으로 이전되는 것을 활성화하고자 ‘조손 상속·증여’와 ‘생전 증여’를 장려하는 방향으로 세제를 개편하였다. 상속·증여 자산이 손자녀의 교육비, 거주용 주택 구입비, 결혼·출산·육아 등의 비용으로 사용될 경우 비과세 혜택을 부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속보다 증여가 더 까다롭다. 증여세도 최고세율이 50%인데 자녀에 대한 증여 한도는 10년간 5000만 원에 불과하다. 미성년자 증여 한도는 10년에 2000만 원으로 월 20만 원도 채 안되는 용돈 수준이다.
2024년 1월부터 직계 비속 자녀가 혼인하거나 출산하면 1억원을 추가로 공제하도록 허용하여 신혼부부는 각각 본인 부모로부터 1억5000만 원씩 증여받아 최대 3억 원을 세금 없이 주택 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을 고려하면 신혼주택 마련에 턱없이 부족한 공제 한도이다.
정부도 상속·증여세제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올해 7월 새로운 개편안을 내놓았다. 상속·증여세 최고세율을 50%에서 40%로 하향 조정하고, 자녀의 상속 공제금액을 인당 5000만 원에서 5억 원으로 10배 증액한 것은 파격적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상속세에 비해 증여세 개편의 폭은 미흡하다. 증여자산 공제액은 현행대로 유지하며, 10억 원 초과에 최고세율 40%가 적용되어 여전히 증여를 억제하고 있다. ‘부의 대물림’이라는 정서에 가로막혀 과감한 ‘조손 상속’과 ‘생전 증여’는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상속·증여세를 ‘부의 대물림’ 차단보다 ‘자산의 선순환’과 ‘인구감소 대책’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대전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