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신용자특례보증, 소액생계비대출, 청년도약계좌, 그리고 서민금융 잇다까지. 서민·취약계층 금융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서민금융진흥원(서금원)에서 출시한 정책금융상품·서비스다. 이 상품·서비스들은 전부 2년 내에 새로 만들어졌다. 코로나19 이후 금리가 급등하고 경기가 위축되면서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금융소외계층에 대한 빠른 지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서금원의 이같은 발빠른 대응은 이재연 서민금융진흥원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24년간 한국금융연구원에서 서민금융·채무조정 관련 연구에 힘써온 이 원장은 2020년 한국금융연구원 부원장직을 거쳐 2022년 1월 서금원장 겸 신용회복위원회(신복위) 위원장으로 취임했다.
이 원장의 취임 이후 서금원의 역할도 급격하게 커지기 시작했다. 정책금융상품과 서비스를 적극 확대하면서 서금원의 연간 정책서민금융 공급규모가 2021년 5조3200억 원에서 지난해 7조1500억 원으로 2년 새 1조8300억 원(34.4%) 늘었다.
국내 서민금융체계의 핵심축을 담당하는 자리를 맡은 지 2년 7개월가량이 지난 시점, 본지와 만난 이 원장은 서민·취약계층에 필요한 지원은 자금공급뿐만 아니라 복합지원상담이라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우리(서금원)가 하는 것은 결국 상담”이라며 “특히 어려움이 큰 취약계층일수록 대면 상담이 중요하기에 재기할 힘을 기를 수 있게 공감하고 경청해 적절한 지원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 원장은 취임 후 가장 큰 성과로 소액생계비대출을 꼽았다. 이는 신청 당일 최대 50만~100만 원까지 빌려주는 정책서민금융상품으로, 신용평점 하위 20% 이하이면서 연 소득 3500만 원 이하인 저신용ㆍ저소득자를 대상으로 한다. 올해 5월 말 기준 총 18만2655명에게 1403억 원가량을 지원했다.
다만 이 원장은 소액생계비대출을 두고 ‘씁쓸한 흥행’이라고 표현했다. 50만 원이라는 소액조차 빌리기 어려운 서민이 많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는 “단순히 자금을 공급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용, 복지, 채무조정 연계 등 경제적 자활을 위한 비금융서비스를 함께 제시한 대표적인 사례”라며 “복합상담을 통해 이용자들이 필요한 제도를 안내받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동기 부여하는 기능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가장 큰 성과로 꼽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금원은 올해 5월 기준 소액생계비대출과 연계해 총 25만7000건의 복합상담을 제공했다.
소액생계비대출이 쏘아 올린 ‘복합상담’이라는 공은 올해 금융 취약계층 대상 복합지원체계 구축의 계기가 됐다. 올해 6월 말 서민금융 종합플랫폼 ‘서민금융 잇다(잇다)’가 모습을 드러낸 배경이다.
이 원장은 잇다가 어려운 상황에 처한 서민이 자신에 맞는 금융상품과 서비스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돕는 ‘지도’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고 봤다. 현재 민간 및 정책 서민금융상품을 한 번에 조회하고 신청할 수 있는 플랫폼은 잇다가 유일하다.
출시 후 한 달여가량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 원장은 체계 구축의 효과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이 원장은 “아직은 출발단계에 있다”면서도 “서금원이 상담한 후 일일이 상품을 연계했던 과거와 달리, 플랫폼에서 마이데이터로 확보한 고객의 정보로 상품을 연계하다 보니 서금원이 추천해준 상품이 실제 은행에서 승인 날 확률이 높아지는 장점이 있더라”라고 답했다.
이 원장은 “앞으로 잇다의 연계 상품을 계속 확대하고 금융회사와 핀테크사 협의를 통해 양방향 연계, 홍보를 추진해 접근성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며 의지를 표했다.
이 원장은 서금원장이자 신복위원장으로서 아쉬운 점으로 ‘인력 부족’을 꼽았다.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에서는 금융서비스뿐만 아니라 금융교육, 컨설팅 등 비금융서비스와 고용·복지 연계 등 복합지원을 제공하는데 센터 내 인력이 부족해 충분한 역할 수행에 제약이 있다는 것이다.
서금원과 신복위는 전국 50개 통합센터에 인력을 파견해 금융·채무조정·복지·고용연계 등 복합상담을 제공 중이다. 올해 6월 말 기준 총 48만7000건의 상담을 진행했다. 서금원의 상담 수요는 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인력에는 큰 변동이 없다. 서금원의 올해 2분기 기준 일반 정규직 정원은 258명으로, 지난해 250명에서 8명이 늘어나는 데 그쳤다. 실제로 근무하는 일반 정규직 직원 수는 같은 기간 233명에서 248명으로 약 15명 증가했다.
이 원장은 “향후 인력을 확충해 통합센터의 역할을 강화하고 정책서민금융을 이용하는 고객 중 부실 위험이 높은 고객에 대해서는 맞춤형 복합지원을 위해 대면 종합상담을 받도록 유도할 계획”이라며 “상대적으로 부실 위험이 낮은 고객에 대해서는 올 하반기부터 ‘잇다’를 통해 금융-고용-복지 연계서비스를 제공해 비대면 복합상담체계도 갖추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금융사각지대의 서민들을 더욱 두텁게 지원하기 위한 방안을 묻는 질문에 이 원장은 ‘민관 협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 서민금융체계는 크게 정부가 담당하는 정책서민금융과 농협·신협 등 상호금융,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이 담당하는 민간서민금융으로 나뉜다. 정책서민금융은 재원이 한정돼 있어 모든 서민금융 지원을 담당하기 어렵다. 민간 서민금융회사의 역할이 강조되는 이유다.
이 원장은 “서민금융회사가 취약계층에 대한 대출 심사와 사후관리 등 역량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며 역량 강화 방안으로 서금원이 2022년 말 개발한 서민특화 신용평가모델을 제시했다. 이는 소득 등 금융 정보 위주로 신용을 평가하던 기존 모형과 달리 통신정보, 자동이체정보 등 다양한 비금융 정보도 함께 반영해 담보가 부족하거나 신용도가 낮은 취약계층도 보증 대출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모델이다. 올해 6월부터 서금원 전 보증상품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그는 “향후 금융기관들이 서민금융을 제공하는 데 필요한 인프라 구축에 기여할 것”이라며 “이 모델을 정착시켜 금융정보는 부족하지만, 상환능력이 있는 분들에게 서민금융지원이 충분히 이뤄질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대형은행의 지원도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취약계층에 대한 대출은 서민금융기관이 담당해야 하지만, 높은 리스크를 관리할 능력이 부족하므로 은행들이 보증재원 지원 등 간접적인 자금중개 기능을 좀 더 적극적으로 수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960년 출생 △1983년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졸업△2010~2012년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외이사 △2014~2018년 예금보험공사 사외이사 △2020~2021년 한국금융연구원 부원장 △2022년~현재 서민금융진흥원 원장ㆍ신용회복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