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도영아, 니땀시 살어야”

입력 2024-07-01 06:00 수정 2024-08-01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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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선 사회경제부장
▲김동선 사회경제부장
한국 프로야구가 새로운 중흥기를 맞고 있다. 올 시즌 반환점에 다다른 지금까지 3개월간 약 600만 명의 관중이 야구장을 찾았다. 불과 2주 사이에 100만 명이 늘어난 추세를 감안하면 올해는 역대 최다 관중을 동원했던 2017년(840만 명)을 훌쩍 뛰어넘어 사상 처음으로 1000만 명을 돌파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

올해 한국 프로야구의 흥행은 기아·한화·삼성 등 지역 기반 정통 구단들의 돌풍과 두산·LG 등 서울 구단의 선전이 어우러지면서 순위 싸움이 치열한 것이 이유다. 스타성을 겸비한 걸출한 각 구단 선수들이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김도영(기아 타이거즈)이 발군이다. 기아 팬들 사이에선 ‘도니살’ 열풍까지 불고 있다. ‘도영아 니땀시(덕분에) 살어야’ 라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 응원이다. 김도영은 이번 시즌 들어 슈퍼 스타로 등극할 채비를 마쳤다. 프로야구 입단 때부터 ‘제2의 이종범’으로 기대를 모았었는데 데뷔 3년 차에 진가를 뽐내고 있는 것이다.

김도영은 올해 4월 리그가 시작하자마자 호타준족을 앞세워 ‘월간 10홈런-10도루’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이는 43년(시즌)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여세를 몰아 지난주에는 전반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20홈런-20도루’를 달성했다. 전반기에 이 기록을 달성한 것은 박재홍(1996년·2000년), 이병규(1999년), 에릭 테임즈(2015년)에 이어 5번째다. 이 기세라면 역대 KBO리그에서 단 6명(8번)만 나왔던 ‘30홈런-30도루’라는 진기록도 달성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도영의 ‘기록 제조’는 비단 그 자신의 야구 센스로만 이뤄진 게 아니다. 팬들이 ‘낡지(늙지) 말라’는 최형우를 비롯한 고참 선수들은 그의 곁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기꺼이 해주고 있다. 신인 감독 이범호 감독은 믿고 기다릴 줄 아는 승부사다. 올해 초 전임 김종국 감독이 ‘뒷돈 수수’ 사건에 연루돼 낙마하면서 어수선할 법도 한데 특유의 리더십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킨 ‘꽃감독’이 아니던가. 그야말로 신예의 발랄함과 노장의 노련미가 신구조화를 이루고, 여기에 위기관리 리더십까지 어우러지면서 ‘즐기는 야구’를 완성했다.

타이거즈뿐 아니라 다른 팀들도 분위기가 크게 다르지 않다. 촘촘한 게임차에 엎치락뒤치락하는 상위권 순위 싸움은 쫄깃하고, 상위권 팀을 만나 대승을 거두는 하위권의 기염은 반전의 매력을 더한다. 야구 팬들은 ‘매일 화가 나 있다’지만 절대강자도 절대약자도 없는 명승부는 보는 이들에게도 ‘즐기는 야구’를 선사하고 있다.

‘기록 제조기’ 김도영의 활약으로 대표되는 프로야구 흥행은 최소한 야구 팬들에게는 청량제가 분명하다. 세상 살맛 나지 않은 현실에서 그나마 위로를 건네주고 있어서다. 오죽하면 ‘니땜시’ 살겠냐고 하지 않겠나. 그도 그럴 것이 야구장 밖 세상은 고난의 행군에 다름 아니다. 치열한 ‘생존게임’으로 내모는 경쟁사회는 말해 무엇하겠나. 열 번 중 세 번만 안타를 쳐도(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3할대 타자로 추앙받는 게 야구인데 현실사회는 하나부터 열까지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칭찬보다는 질책이, 배려보다는 비난이 앞선 사회가 돼 버렸다. 서로의 기록 경신을 기꺼이 응원하는 야구와 달리 현실사회에선 이를 고깝게 여기는 이들이 많다. 남 탓 하기에 바쁜 세상에 지척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흉금을 터놓기도 쉽지 않다. MZ들은 궂은일을 모두 떠넘기는 선배가 밉상이고, ‘라떼’들은 힘들다 싶은 일을 미루는 후배가 속 터진다.

올해 야구를 보면서 드는 단상. 가까이 있는 가족, 동료에게 가끔이라도 이 한마디를 해보는 건 어떨까. “OO아, 니땀시 살어야.”

김동선 사회경제부장 matth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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