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송경원 평론가 “영화에 대한 내 마음을 솔직하게 쓰고 싶다”

입력 2024-06-30 10:00 수정 2024-07-01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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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 영화평론가 (본인 제공)
▲송경원 영화평론가 (본인 제공)

좋으면 좋다고 명쾌하게 말하는 사람이 있고, 좋아하는 대상 앞에서 자꾸만 머뭇거리는 사람이 있다. 너무 좋기 때문에 어떤 말을 골라야 할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다. 선뜻 어느 것도 결단하지 못한 채 망설이기. 혹은 에두르기. 송경원 영화평론가의 글에는 좋아하는 영화 앞에서 망설이고, 에두르는 어린아이의 수줍음 같은 게 있다. “이런 사람이 뭘 사랑한다고 할 땐 정말 사랑하는 것이다”라는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말은 아마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리라.

“지금의 나는 반짝이는 완벽한 순간보다 그렇게 카메라가 생략해 버린 공백의 시간이 더 궁금하다.” - 책 ‘얼룩이 번져 영화가 되었습니다’ 中

그의 첫 책 ‘얼룩이 번져 영화가 되었습니다’에 실린 글들은 정교하고 치밀한 평론이라기보다는 반응과 고백으로서의 에세이에 가깝다. 영화를 해부하는 것보다 영화와 마주한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그가 생각하는 영화 글쓰기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는 영화 ‘봄날은 간다’의 유명한 새벽녘 롱 숏에 집중하지 않고, 상우를 은수에게 데려다주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택시 운전사의 마음을 생각한다. 영화는 그대로다. 영화와 마주한 그의 태도가 달라졌을 뿐이다.

마냥 좋은 친구는 없다. 좋다가도 싫고, 싫다가도 좋다. 그런 양가적인 감정이 시간의 깊이와 어우러진 오래된 친구가 있을 뿐이다. 영화도 그렇다. 마음에 남는 영화는 좋은 영화가 아니라 오래된 영화다. 과거와 시차를 두고 자꾸만 리플레이해야 하는 세계다. 보고 또 보면서 그때 그 영화가, 그 세계가 내게 남긴 얼룩이 지금 이 순간 어디로 번졌는지 감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 글쓰기는 스스로의 좌표를 확인하는 작업이었다”라는 그를 최근 당산역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아래는 일문일답.

▲책 '얼룩이 번져 영화가 되었습니다' 표지 (바다출판사)
▲책 '얼룩이 번져 영화가 되었습니다' 표지 (바다출판사)

- 첫 책이 늦었다

“평론가로 당선된 후 15년 정도 영화 글을 쓰고 있다. 그렇게 치면 첫 책이 늦게 나온 셈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잡지에 쓴 글은 쉽게 휘발한다고 생각했다. 매주 쓰고 나면, 그 글의 쓸모는 다했다는 입장이었다. 그걸 굳이 묶어서 책을 낼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래서 만약 책을 낸다면 새롭게 쓰고 싶었다. 매주 마감하다 보니까 새로 쓰는 건 거의 불가능하더라. (웃음) 원래 이 책도 3년 전에 나왔어야 했는데 좀 늦었다.”

- 어쩌다 영화평론가의 길을 걸었나

“원래 영화 평론을 하겠다는 자의식이 강한 사람도 아니었고, 소위 말하는 시네필도 아니었다. 정성일 평론가는 영화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형태 중의 하나가 글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렇게까지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영화 글쓰기에서 오히려 방점은 영화가 아닌 글쓰기에 있었다. 굳이 영화가 아니라도 글을 써서 먹고 살았으면 했다. 그렇게 좁혀지다 보니 영화 평론을 쓰게 됐다. 지금도 평론만 고집하지 않는다. 다른 형태의 글들도 두루두루 잘 쓰고 싶다.”

- 영화평론가로서의 태도가 있나

“평론가가 100명 있다면, 100명 다 유형이 다르다. 정성일 평론가처럼 전형적인 시네필 유형이 있다. 영화를 보고 분석하다가 사랑에 빠져서 최종적으로 만드는 단계까지 갔다. 이동진 평론가처럼 영화에 대한 소개를 잘하는 분도 있다. 대중적인 화법으로 친절히 잘 설명한다. 그렇게 치면, 난 이 두 분과는 좀 다른 것 같다. 나에게 영화 평론은 자기 확인 같은 작업이다. 내가 어디쯤 있고, 지금 뭘 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 영화 평론이다. 결국 내 얘기를 하고 싶은 거다. 내가 세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영화 평론이라는 형태로 얘기하는 것이다.”

- 어떻게 글을 쓰나

“일단 영화를 최소 두 번은 본다. 초고는 되도록 빨리 쓴다. 문장의 완성도 등을 신경 쓰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A부터 Z까지 쭉 쓴다. 그런 다음 퇴고를 많이 한다. 글을 쓰는 것보다 지우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 대학원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연구자는 적성에 맞지 않았나

“대학원에 진학하고 평론가로 데뷔했다. 평론보다 논문을 먼저 썼다. 양쪽 다 해보니 논문보다 평론이 훨씬 재미있었다. 논문은 기본적으로 선행 연구를 해야 한다. 앞선 연구자들이 무엇을 연구했는지 정리한 다음, 뒤에 내 얘기를 몇 줄 더하는 작업이다. 나는 몇 줄 더하는 게 재미있었다. 아까 말한 것처럼 내 얘기를 하고 싶었다.”

- 영화에 대한 칭찬도, 비판도 아닌 입장을 취하는 글에서 유독 강점을 발휘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남매의 여름밤’ 같은 글이다

“사실 영화를 비판하는 게 제일 쉽다. 좋게 본 영화를 구체적으로 칭찬하는 게 훨씬 어렵다. 근데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은 그런 것들이 아니다. 내가 쓰는 대부분의 글은 ‘맞다 혹은 틀리다’ 이렇게 나눠서 분석하는 내용이 아니다. 오히려 내 마음의 형태를 다듬어 나가는 쪽의 글이 훨씬 많다. 이런 부분은 좋은데, 저런 부분은 좀 아쉽다는 식이다. 그렇다 보니 질문한 것처럼 그런 애매한 글이 나오는 거다. (웃음) 물론 큰 방향에 대한 호불호는 있다. 나는 통찰력이 빼어난 것도 아니고, 시선이 날카로운 것도 아니다. 공부를 많이 해서 레퍼런스를 착착 읊을 수도 없다. 재능이 부족하다. 딱 하나 놓지 말자는 게 있다. 바로 솔직하게 쓰기다. 아까도 말했지만, 내가 영화를 쓰는 이유 중의 하나는 내가 누구이고, 어디쯤 와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럼 거짓말하면 안 된다. 모르면 모른다고 쓴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지금은 알게 됐다고 쓴다.”

▲영화 '기생충' 스틸컷 (CJ ENM)
▲영화 '기생충' 스틸컷 (CJ ENM)

- ‘기생충’에 대해 “장르적 쾌감이 앞서고 메시지는 부차적인 것”이라고 했다

“모두가 칭찬하는 영화만큼 재미없는 영화가 없다. 누가 그랬다. 천국에 다 성인군자들만 가면, 천국이 얼마나 지루하겠냐고. (웃음) 내가 애정하게 되는 작품은 갑론을박이 나오는 영화다. 비판을 받거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영화들에 더 마음이 쓰인다. 몇몇 감독들을 예로 든다면 홍상수의 영화와 이창동의 영화는 방향이 다르다. 홍상수의 영화는 리얼리즘에 가깝다. 현실을 반영한 리얼리즘이 아니라 '그것이 거기에 있었다'는 포착의 리얼리즘이다. 반면 이창동의 영화는 여전히 소설적인 리얼리즘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 같다. 서사를 통해 가치관을 전달하는, 표현주의적인 재현의 방식이다. 굳이 나눈다면 봉준호는 홍상수보단 이창동 쪽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일부를 있는 그대로 포착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치밀하게 설계하고 상징화 한다. 나는 그 과정에서 생략되는 부분에 더 관심이 가는 쪽이다.”

- 홍상수의 영화를 좋아하나

“원래부터 좋아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홍상수의 영화는 영화가 아닌 글로 접할 때가 게 훨씬 더 재미있었다. 그러다가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써야 해서 그의 영화를 다시 보다가 애정이 생겼다. 내 기준에는 데뷔작이나 초창기 ‘강원도의 힘’ 혹은 ‘북촌 방향’보다 지금의 홍상수 영화가 훨씬 더 좋은 것 같다.”

- 박찬욱의 영화에 대해서는 “장면과 이미지가 내용과 상황을 앞서는 그의 영화는 현란한 만큼 공허하다고 느껴왔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헤어질 결심’에 이르면 “끝과 끝이 통한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는데

“박찬욱의 영화는 영화 위에 떠 있는 영화다. 현실이 중요한 게 아니다. 말하자면 내가 너무 사랑하는 영화라는 레퍼런스 위에서 작곡한 현실이다. 봉준호의 영화는 어쨌든 한국이라는 지정학적인 위치에 발을 붙이고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살인의 추억’과 같은 영화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생충’과 ‘헤어질 결심’만 놓고 바라본다면, 후자에 더 마음이 갔다. 이 영화도 현실과 괴리돼 있다. 근데 탐미주의라고 해야 하나. 영화의 아름다움이 이렇게까지 표현되면, 마음이 흔들린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구나 생각했다. (웃음) 아무튼 그렇다.”

▲영화 '우리의 하루' 촬영 현장. 홍상수 감독. (영화제작전원사, 콘텐츠판다)
▲영화 '우리의 하루' 촬영 현장. 홍상수 감독. (영화제작전원사, 콘텐츠판다)

- 이상한 질문인데 그렇다면 박찬욱과 봉준호, 이창동을 한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나

“감독들은 모두 각자의 창문으로 세계를 바라본다. 같은 대상을 바라본다고 해도 결과값은 다르게 나오는, 각각의 세계다. 그걸 카데고리로 묶는 건 크게 의미 없을 것 같다. 한편으론 그 의미 없는 짓을 굳이 하고 싶어하는 부류가 평론가이기도 하다. 나는 봉준호, 박찬욱, 이창동의 바탕을 표현주의 관점에서 본다. 일정 부분 리얼리즘적인 요소가 들어갈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재현의 세계다. 반면 홍상수의 기본태도는 리얼리즘의 연장에 있다고 생각한다. 거기 있었던 무언가를 찍는다는 것에 가깝다. 여기서 무언가는 대상이 아니다. 자신의 감정이라고 해도 좋고, 그 순간에 일어난 유일한 반응이라고 할 수도 있다. 시간과 함께 흘러가버려 똑같은 형태로 재현은 불가능한 무언가. 물론 이런 단순한 이분법으론 아무 것도 설명할 수 없다. 애초에 영화를 가지고 뭘 할 것인가에 대한 서로 다른 지향점이 있다. 우열이 있는 것도 아니고, 수준의 높낮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각자의 지향이 다를 뿐이다. 그렇게 자신만의 방향을 믿고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작가(author)다.”

- 정성일에게는 임권택과 홍상수, 이동진에게는 박찬욱과 이창동 등 일관되게 지지하는 감독들이 있는 것 같은데, 당신에게는 그런 감독이 없는 것 같다

“나도 그게 고민이었다. 평론가는 모두 자기만의 감독이 있다. 적어도 이 감독에 대해서는 ‘내가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도 그런 감독을 찾으려고 했다. 근데 결과적으로 나는 그게 안 되는 사람인 것 같다. 아까 그 맥락으로 돌아가면, 거짓말할 수는 없으니까. 그때는 좋았는데, 지금은 싫고, 반대로 지금은 좋은데 나중에 싫어질 수도 있는 거다. 그 마음을 솔직하게 쓰고 싶다. 나는 이미 그 감독에게 마음이 떠났는데, 계속 좋다고 해야 하는 것을 못 견디는 것 같다.”

- 그런 태도가 오히려 당신의 강점인 것 같다. 좋아하면서도 뭔가 거리를 두는 느낌이랄까

“다르게 얘기하면, 색깔이 불분명한 거다. 독자들이 볼 때, 이 사람은 어떤 얘기를 시원하게 뽑아내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근데 내가 그렇게 생겨 먹었다. 그것을 인정하기까지 굉장히 오래 걸렸다. ‘나만의 감독을 만들어야 돼’ 혹은 ‘색깔을 분명히 해야 돼’라는 생각을 계속했지만, 그렇게 안 되더라. 내가 느끼는 바도 계속 바뀌고, 세상에 대한 내 가치관도 계속 바뀌니까. 나쁘게 말하면 어정쩡하게 있는 것이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찾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도 궤적, 기록 이런 말로 갈음했다.”

-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라는 말이 영화에 대한 당신의 태도를 설명하는 말인 것 같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지. (웃음) 시작할 때도 말했지만, 나는 확실한 지향과 목표를 갖고 있는 사람은 아니다.”

- 당신이 생각하는 영화적인 순간은 뭔가

“내가 제일 경계하는 표현이 ‘~적이다’라는 표현이다. ‘~적이다’라는 게 잘 모르겠다고 퉁치는 표현처럼 느껴져서다. 엄밀하게 설명해야지. 그게 안 될 때 ‘~적이다’라고 쓴다. 게으른 표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대답하면, 영화 글쓰기는 결국 영화적인 게 무엇인지 설명해내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영화적인 순간은 모두가 다르게 설명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영화에 어떤 감동스러운 장면이 나온다고 치자. 그 장면보다 훨씬 더 감동스러운 글을 쓸 수는 있다. 그러나 그 글이 그 장면과 똑같을 수는 없다. 그 장면은 소설로도, 음악으로도, 평론으로도, 조각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본질적으로 영화만이 담을 수 있는 순간이 있는데, 나는 그게 영화적인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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