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너머] 문체부와 출협의 지리멸렬(支離滅裂)

입력 2024-03-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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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변하지 않는 진리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10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취임식에서 했던 말이다. 그는 "평생 현장을 떠나지 않은 사람으로서 자신 있게 말씀드린다"라며 "열린 마음으로 현장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균형 있는 시각에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말뿐이 아닌, 현장에서 행동으로 보여드리겠다"라고 말했다.

이후 유 장관은 문화, 체육, 관광 등 다양한 업계 관계자들과의 간담회를 통해 활발한 소통 행보를 보였다. 이제 거의 만나지 않은 업계는 없지만, 만나지 않은 사람은 있다. 바로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장이다.

문체부와 출협의 갈등은 지난해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박보균 장관은 출협의 서울국제도서전 수익금 누락 의혹과 관련, 윤 회장을 비롯해 주일우 서울국제도서전 대표 등을 보조금법 위반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수사 의뢰했다.

서울국제도서전은 출협이 문체부 산하기관인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주최하는 행사다. 출협은 행사가 끝나면 지원받은 보조금뿐만 아니라 보조사업 수행에 따라 발생한 수익금을 출판진흥원에 보고해야 한다.

문체부에 따르면, 출협은 2018~2022년(코로나19로 축소 개최된 2020년 제외) 도서전 수익금 수억 원을 누락했다. 출협이 제출한 수익금 통장 사본의 거래 내역이 많은 부분 삭제 및 블라인드 처리됐는데, 통장 원본과 비교한 결과 수억 원이 누락됐다는 것.

이에 출협은 "26년간 도서전을 위해 사용한 통장에서 사안과 관련이 없다고 판단되는 내역은 블라인드로 처리해서 제출했다"라며 "보조금법상 보조금 관리정보는 간접보조사업자 등 관련자들이 개인정보를 보호할 의무가 있어 블라인드 처리는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반박했다.

사태가 불거진 후 2개월 뒤 박보균 장관이 물러나고 유인촌 장관이 새롭게 취임했지만, 변화는 없었다. 오히려 문체부는 서울국제도서전 예산(6억7000만 원)을 출협이 아닌 개별 출판사에 직접 지원한다고 밝혔다. 출협은 '패싱'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0월 샤르자국제도서전에서 출판 기자들은 문체부와 출협 관계자들을 따로 만나야 했다. 다 같이 모여 정책과 현장의 이야기를 공유하면 더 좋았겠지만, 냉랭한 분위기에 외려 기자들이 양쪽의 눈치를 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됐다.

책 읽는 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 주무 부처인 문체부와 출판계 대표 단체인 출협이 악화일로에 있다는 건 국민적 불행이다. 함께 힘을 모아 건강한 출판문화 진흥과 독서부흥 운동을 해도 모자랄 시간인데, 문자 그대로 지리멸렬(支離滅裂)이다.

14일 유 장관은 출판계 주요 단체들을 만났지만, 이날 출협은 "수사 대상으로 규정한 사람들과 대화가 가능하겠나", "문제가 있다면 하루빨리 회장을 기소하고 구속이라도 할 일", "문체부는 출판정책을 일방적으로 강행하고 있다" 등의 이유로 불참했다. 유 장관은 "출협이 참석하지 않아서 아쉽다"라고 밝혔다.

문체부와 출협은 각자의 논리를 내세우며 사실상 만남을 피하고 있다. 불법이 있으면 처벌하면 된다. 요컨대 그사이에 '소'를 키우려면 일단 만나야 한다. 장관의 말처럼, 답은 항상 현장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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