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종려상 2년 연속 수입 쾌거 “거장·스타 찾는 대신 새로운 시도”

입력 2023-06-22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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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연속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입한 유현택 그린나래미디어 대표
엔데믹 후로 거장ㆍ유명배우 선호하는 기존 구매 논리 안 통해
일본 애니 큰 흥행, 관객이 좋은 콘텐츠 ‘고른다’는 증거
‘5만 장벽’ 막힌 다양성 영화 ‘20만 시장’으로 다시 인도할 것

▲유현택 그린나래미디어 대표가 19일 서울 서초구 그린나래미디어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에 앞서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테이블 위에는 '프란시스 하', 더 웨일' 등 그간 그린나래미디어가 수입한 영화들의 포스터가 놓여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유현택 그린나래미디어 대표가 19일 서울 서초구 그린나래미디어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에 앞서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테이블 위에는 '프란시스 하', 더 웨일' 등 그간 그린나래미디어가 수입한 영화들의 포스터가 놓여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거장이나 유명 배우가 나오면 일단 수입했던 기존의 영화 구매 논리가 더는 유효하지 않은 새로운 세계에 진입한 것 같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을 2년 연속 수입한 유현택 그린나래미디어 대표는 지난 19일 서울 잠원동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운이 좋았다”면서도 영화 수입 시장의 변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그랬듯, 황금종려상(Palme d'Or)은 칸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이 거머쥘 수 있는 최고의 영예다. 지난해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슬픔의 삼각형’이, 올해 저스틴 트리엣 감독의 ‘아나토미 오브 어 폴’이 영광의 자리에 올랐고 유 대표는 그 작품을 ‘기가 막히게 알아채고’ 미리 구매했다.

영화수입배급사는 통상 영화제 기간 열리는 필름마켓에 참석해 자국에서 개봉할 작품을 구매한다. 폐막일에 공개되는 수상결과를 알지 못하는 시점인 만큼, 완성된 영화를 현지 관람한 대표의 ‘감’이 작동하면 직원들의 ‘지지와 동의’를 얻어 구매 경쟁에 뛰어드는 식이다.

‘억’ 소리 나는 구매비를 과감하게 지불한 뒤 들려오는 수상 소식은 쾌감과 동시에 안정제로 작용한다. 유 대표는 “작품 수상이 비즈니스 면에서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상업 논리보다 작가주의나 예술성을 앞세운 다양성 영화를 선호하는 관객에게 ‘황금종려상 수상작’은 일종의 품질인증마크이기 때문이다. 수입배급사로서는 홍보에 수월할 수밖에 없다.

지난달 개봉한 황금종려상 수상작 ‘슬픔의 삼각형’ 역시 팬데믹 이후 움츠러든 영화 시장 상황에서도 5만 명의 관객을 모을 수 있었다.

▲유현택 그린나래미디어 대표가 19일 서울 서초구 그린나래미디어에서 지난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슬픔의 삼각형' 포스터를 들어 보이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유현택 그린나래미디어 대표가 19일 서울 서초구 그린나래미디어에서 지난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슬픔의 삼각형' 포스터를 들어 보이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다만 만족할 만한 수치는 아니다. 돌이켜보면 잔뜩 움츠러든 관객 수로도 볼 수 있다. 모객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 ‘가버나움’(2019),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2020)과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2020) 사례를 언급한 유 대표는 “14~18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던 시장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짚었다.

다만 최근은 “관객이 영화를 (까다롭게) 고르는 시장”이라는 점이 다르다고 했다. “예전의 구매 공식처럼 거장의 영화, 유명 배우가 출연하는 영화에 집중하기보다는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감독이 무명일 지라도 선입견을 들어내고 작품에 대한 더 많은 검토를 해야 한다”면서 “수입사로서는 일이 더 많아지겠지만 관객만큼 우리도 영화를 신중하게 고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올해 첫 작품으로 선보인 ‘애프터 썬’은 그런 면에서 좋은 변화를 감지한 작품이다. 부녀가 함께했던 유럽 휴가 시절을 회상하는 잔잔한 영상미가 돋보이는 이 작품은 유명 감독이나 배우가 출연하지는 않았음에도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슬픔의 삼각형’과 마찬가지로 5만 관객을 동원했다.

유 대표는 “’애프터 썬’은 구매 금액 대비 회사에 이익을 안겨준 영화라고 볼 수 있다”면서 “이제는 그런 영화들이 우리 마음에 더 와닿고 새로움도 준다”고 했다.

유 대표는 완성된 작품을 보지도 않고 감독, 배우, 시나리오 정도만 보고 먼저 구매하는 소위 ‘프리바잉’도 줄이는 추세라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과거 우디 앨런 등 유명 감독의 작품의 경우 출연 배우와 간단한 줄거리만 보고도 구매를 결정하는 사례가 존재했다.

그는 “경쟁 구도상 작품을 선점해야 한다면 아예 안 할 수야 없겠지만, 이제는 ‘이 감독의 신작’보다는 대본을 꼼꼼히 읽고 지금의 주요 관객인 2030 관객이 뭘 좋아하고 찾을지 갈구하며 시장의 흐름 놓치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올해 ‘애프터썬’, ‘더 웨일’, ‘슬픔의 삼각형’ 등을 선보인 그린나래미디어는 하반기에 미국 주식시장에 파란을 몰고온 게임스탑 사태를 영화화한 ‘덤 머니’(Dumb Money)를 개봉할 예정이다. 사회적 사안을 소재로 한 만큼 관객 확장성이 있을 거라고 보고 있다.

극장 침체, 영화의 위기 등 부정적인 전망이 끊임없이 나오는 시장임에도 일본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즈메의 문단속’이 유례없이 큰 흥행에 성공했다는 점을 들어 유 대표는 “관객은 결국에는 콘텐츠를 따라서 움직인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다양성 영화 역시 계속해서 5만 명대에 머물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관객을 다시 극장으로 인도해 10만 명, 20만 명의 벽을 뚫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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