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바이오업계는 빠른 결과를 원하다 보니 기술이전에 전적으로 의지합니다. 하지만 기술이전 된 파이프라인이 제품화까지 이어져야 바이오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진정한 성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병건 지아이이노베이션 회장은 바이오기업의 영속성을 강조했다. 지아이이노베이션은 이중 융합 단백질을 기반으로 차세대 면역치료제를 연구·개발(R&D)하는 기업으로, 올해 증시에 입성한 첫 번째 신약개발 회사다.
지난달 30일 코스닥시장 상장한 지아이이노베이션은 순조로운 우상향 흐름이다. 안정적인 출발에 최근 본지를 만난 이 회장의 표정도 밝았다.
지아이이노베이션은 기업공개(IPO) 전부터 안팎의 기대가 컸다. 2017년 설립된 이 회사는 2건의 파이프라인을 전임상 단계에서 총 2조3000억 원 규모로 기술이전했다. 한때 장외시장에서 시가총액 1조 원을 넘겼고, 프리 IPO 당시 7000억 원대의 기업가치를 평가받았다. 신약의 가능성을 숫자로 충분히 인정받은 셈이다.
실전은 녹록지 않았다. 공모가는 희망 밴드를 밑돈 1만3000원, 공모가 기준 시총은 3000억 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얼어붙은 바이오 IPO 시장이 반영된 결과였다.
그러나 이 회장은 “기회가 될 때 들어가야한다”라고 판단했다. 지아이이노베이션은 잇따른 투자 유치로 2025년까지 R&D가 가능한 자금을 확보한 상태였다. 상장은 회사의 기술력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에 온전히 신약 개발에 집중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는 “밸류에이션이 높은 것이 회사에 좋은 것은 아니다”라면서 “우리는 자금에 허덕이는 회사가 아니다. 시장이 원하는 수준에 맞게 들어가고, 이후 실적으로 올라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시총은 5000억 원대에 안착했다. 이 회장은 내년까지 시총 1조 원을 넘어설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회사의 핵심 파이프라인들에 대한 추가 기술이전 논의가 활발하기 때문이다. 흑자전환도 이때로 전망했다.
물론 1조 원에서 끝은 아니다. 본격적 성장세는 기술이전한 파이프라인이 상업화에 성공한 다음부터다. 시점은 2030년으로 예상한다.
이 회장은 “2030년 판매허가가 나면 시총 3조 원까지 가능할 것”이라며 “궁극적으로는 신약으로 10조 원 가치의 기업이 되는 것을 지아이이노베이션이 앞장서서 보여주겠다”라고 강조했다.
알레르기 치료제 ‘GI-301’은 최근 개발에 탄력을 받았다. 강력한 면역글로불린 E(lgE) 결합력과 자가항체 결합으로 알레르기 반응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어 시장의 미충족 수요(Unmet Needs)를 채울 치료제로 평가받는다. 2020년 유한양행에 전 세계(일본 제외) 권리가 1조4000억 원 규모로 기술이전됐다.
이 회장은 GI-301이 경쟁약물인 ‘졸레어’보다 뛰어나다고 자신했다. 졸레어는 글로벌 매출 5조 원의 블록버스터 항체 바이오의약품으로, 알레르기성 천식과 만성 특발성 두드러기, 만성 비부비동염 치료에 쓰인다. 그러나 독성으로 6세 이하에게는 사용할 수 없고, 시장 규모가 큰 만성 특발성 두드러기 환자의 약 절반에게 듣지 않는다.
유한양행은 오는 6월 유럽에서 GI-301의 임상 1상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이후 지아이이노베이션은 일본에 대한 기술이전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이미 알레르기에 특화한 3곳의 회사와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연말까지는 딜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 회장은 GI-301의 글로벌 기술이전도 기대하고 있다. 얀센이 사들인 ‘레이저티닙’처럼 유한양행이 다시 한 번 글로벌 제약사와 딜을 맺는 방식이다.
그는 “항암제는 워낙 많은 회사가 경쟁하고 있다. 알레르기 치료제 시장은 경쟁 강도는 약하면서도 시장 규모는 충분해 훨씬 유망한 시장”이라며 “졸레어보다 우위가 뚜렷해 기술이전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지역 한정으로 기술이전된 GI-101도 글로벌 기술이전 가능성이 있다. ‘키트루다’와 병용 임상 중인데, 개발사 머크는 특허방어를 위해 피하주사(SC)제형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경우 키트루다와 함께 투여할 치료제도 SC제형이어야 환자들의 불편을 줄일 수 있다. SC제형으로 개발하는 파이프라인이 ‘GI-102’이다.
인터뷰 당일 아침에도 이 회장은 글로벌 제약사와 화상 미팅을 가졌다. 그는 “글로벌 제약사에서 각 분야별로 10여 명이 참석할 정도로 GI-101과 GI-102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30여년간 바이오업계에 투신한 업계 전문가이자 전문 경영인이다. LG화학 바이오연구소 센터장과 녹십자·녹십자홀딩스 대표이사, 종근당 부회장, 한국바이오협회 이사장, SCM생명과학 대표이사 등을 거쳤다.
그는 “바이오협회 이사장이던 2013년만 해도 K바이오는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이 없었다”라고 회상하며 “지금은 정확히 10년이 지났는데 위상이 굉장히 높아져서 해볼 만하다”라고 밝혔다.
지금은 바이오선진국으로 떠오른 미국이지만,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바이오벤처에 투자하는 사람은 가족(Family)·친구(Friend)·바보(Fool)의 ‘3F’ 뿐이란 농담 섞인 진담이 존재했다. 지아이이노베이션이 벤치마킹하는 리제네론은 2005년 시총 1조 원대에 불과했지만, ‘듀피젠트’와 ‘아일리아’의 제품화로 현재는 시총이 115조 원에 이른다.
이 회장은 “글로벌 제약사 한 곳이 연간 15조 원의 연구개발비를 쏟아부을 때 국내 기업들의 연구개발비를 총망라해도 4조 원에 그친다”라면서 “바이오벤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금력인데, 우리 정부는 아직 K바이오가 글로벌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서 지원에 소극적”이라고 진단했다.
기업뿐만 아니라 규제당국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국립보건원(NIH)처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규제인력을 육성해야 K바이오가 살아난다”라면서 “바이오시밀러가 경쟁력을 갖게 된 것처럼 신약 개발도 공격적으로 지원해서 차별화를 만드는 정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