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계가 근로시간 제도를 시대변화에 부합하게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지난 60년 동안 생산직 비중이 줄고 관리·전문·사무직이 늘어나는 등 변화한 산업구조와 근무 형태에 맞는 근로시간 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5일 ‘근로시간 적용제외제도 국제 비교와 시사점 연구’ 보고서를 통해 “과거 제조 및 생산직에 맞춰서 만들어진 획일적 근로시간 규율체계는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구조·근무 형태와 괴리가 있다”면서 “탄력·선택·재량 등 유연근로제를 기업 현실에 맞게 개선하고, 노사가 협의와 합의를 통해 근로시간 제한 규정을 선택적으로 적용 배제할 수 있는 ‘한국형 화이트칼라 이그젬션(White Collar Exemption)’ 제도를 즉시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산업구조의 변화와 함께 전체 취업자 중 화이트칼라 비중이 크게 늘었다. 1963년 18.3%였던 화이트칼라 비중이 2021년에는 41.5%까지 높아졌다. 반면 서비스·판매직은 동기간 41.4%에서 22.5%로, 블루칼라는 40.3%에서 36.0%로 줄었다.
대한상의는 “현재 정부가 노동시장 개혁과제로 추진하는 근로시간제도 유연화 방향에 대해 기본적으로 동의”한다면서도 “논의 중인 개선방안 역시 기존의 근로시간 규율 틀 내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기업의 다양한 요구와 현실을 반영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정부는 지난 7월부터 전문가 중심의 미래노동시장연구회를 구성하여 근로시간제도 유연화 관련 논의를 시작했고 이달 중순 초안이 발표됐다. 초안 내용에는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주 → 월·년’으로 변경, 근로시간저축계좌제 도입, 선택근로제 적용 대상 확대 등이 포함됐다.
대한상의는 이를 두고 “근로시간 총량 규제라는 기존의 규율 체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산업·업무의 특성, 근로 형태의 다양성 등을 고려해 탄력근로제, 선택근로제 외에도 근로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를 주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우리보다 근로시간이 짧은 주요 선진국에서 근로시간 유연화에 대한 논쟁이 거의 없는 것은 특정 직무에 대해 근로시간 규율을 적용하지 않거나, 노사가 합의를 통해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하는 협정을 체결할 수 있는 제도를 이미 도입해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업무의 특성상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업무성과를 평가하는 것이 부적합한 전문직·관리직·고소득자에 대해 근로시간 규율을 적용하지 않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제도’를 두고 있다. 적용대상은 주급 684달러 이상인 관리직, 행정직, 전문직 등에 해당하거나 연간소득이 10만7432달러 이상의 고소득 근로자다.
일본도 노동기준법을 개정해 미국과 유사한 ‘고도 프로페셔널에 대한 근로시간 면제제도(탈시간급제)’를 2019년 4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대상은 연간소득이 1075만 엔 이상 고소득 전문직 근로자이며, 초과근로수당·휴일 등 근로시간 규정의 적용이 제외된다. 다만 미국과 달리 1년간 104일 이상의 휴일 보장 등의 건강권보호조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영국은 근로계약을 통해 최장근로시간인 1주 48시간을 초과해 근무할 수 있도록 약정하는 ‘옵트 아웃(Opt Out) 제도’를 두고 있다. 다만 근로자 보호를 위해 옵트 아웃 계약을 체결하더라도 자유롭게 취소할 수 있으며, 이를 이유로 사용자는 불이익을 주거나 해고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프랑스는 단체협약을 통한 연간 근로일수와 임금을 포괄 약정하는 ‘연 단위 포괄약정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단체협약에 따라 약정을 한 경우 법정근로시간 및 최장근로시간에 관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보고서는 “우리나라도 고소득 전문직·관리직·R&D직에 대한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적용과 함께 나아가 노사가 자율적으로 근로시간 규율방식을 결정할 수 있는 근로시간 자유선택제(옵트 아웃)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