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영리병원인 제주 녹지국제병원을 허가하면서 내건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은 위법하다는 판단이 나왔다. 제주지법 행정1부(재판장 김정숙 수석부장판사)는 5일 중국 녹지그룹 자회사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이하 녹지제주)가 제주도를 상대로 낸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 조건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제주도는 2018년 12월 5일 외국의료기관 개설을 허가하면서 진료 대상자를 외국인 의료관광객으로 제한했다. 녹지제주 측은 이에 반발해 2019년 2월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3년 2개월 만에 제주도가 제시한 조건을 취소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녹지제주는 제주도의 조건부 허가에 병원 문을 열지 않았다. 도는 ‘병원 개설 허가 한 날부터 3개월 이내에 정당한 사유 없이 업무를 시작하지 않으면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는 의료법 규정을 토대로 2019년 4월 병원 개설 허가를 취소했다. 녹지제주는 이에 불복해 ‘허가 취소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1월 13일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이번 판결로 녹지제주 측은 외국인의료기관 허가조건 취소, 개설 허가 취소 소송에서 모두 승소했다. 다만 녹지병원 실제 진료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병원 운영주체인 중국녹지그룹이 이미 병원 건물을 매각해 사실상 운영주체가 없기 때문이다.
의료영리화저지 제주도민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에 따르면 녹지병원 부동산 소유권이 올해 1월 19일자로 국내 법인으로 매각됐다. 운동본부 측은 지난 2월 “녹지병원은 제주특별법상 영리병원 개설허가 요건을 갖추지 못하게 됐다. 건물 매각으로 더는 영리병원이 이니다”라고 밝혔다.
운동본부는 이날 1심 재판이 열린 법원 앞에서 침묵시위에 나서 “녹지그룹은 이번 소송으로 얻을 이익이 없기 때문에 재판부가 각하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운동본부는 “병원을 완전 매각하고 병원사업을 하겠다는 것은 제주도민을 우롱하는 것”이라며 “국민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영리병원 등 의료민영화 정책은 즉각 중단돼야 하고,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등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공공의료 대폭 확충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녹지그룹은 2015년 12월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주 서귀포시 헬스케어타운 내 2만8002㎡에 연면적 1만8253㎡(지하 1층·지상 3층) 규모의 녹지국제병원 사업계획을 승인받았다. 총 778억원을 투입해 47병상 규모의 녹지국제병원을 준공하고 직원 134명을 채용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