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운의 혁신성장 이야기] 청년은 복지나 공정보다 ‘좋은’ 기회를 원한다

입력 2021-07-0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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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재보선 이래 청년이 시대적 화두로 떠올랐다. 청년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경쟁적으로 불붙고 있다. 야당은 청년을 당대표로 선출해 청년 정당으로 변신하려고 시도한다. 여당은 약관의 26세 최고위원을 청와대 1급 청년비서관으로 발탁했다.

정부도 다양한 청년 대책을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 포함해 발표했다. 청년 취업 활성화를 위해 구직 청년에게 월 50만 원씩 최대 300만 원을 지원하는 구직촉진수당 지원대상을 확대하고 요건을 완화했다. 생애 최초로 창업에 도전하는 20대 청년에게는 초기 사업화 자금을 최대 2000만 원 지원해 주기로 했다.

정치권과 정부의 노력에도 기성세대에 대한 청년의 불만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오히려 청년의 환심을 사려는 시도가 역효과를 내고 있다. 특히, 행정고시에 합격한 공무원이 25년 이상 근무해야 올라갈 수 있는 1급의 청와대 비서관에 대학을 졸업하지도 않은 휴학생이 선임된 것에 대한 불쾌함이 크게 표출됐다. 이 청년 비서관의 해임을 요청하는 청원이 청와대 게시판에 등장했고, 분노를 공유하는 ‘박탈감닷컴’까지 출현했다.

야당의 청년 대표는 통상적으로 당내에서 임명하던 대변인을 공개모집으로 전환해 토론배틀 방식으로 선발한다고 해서 화제를 모았다. 기회가 공정하게 주어진다는 점을 강조했으나 청년들의 공감을 얻어내지 못했다. 다수가 탈락하고 소수의 실력자만이 승리하는 공개경쟁 방식이 청년들에게 위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엘리트 출신의 청년 정치 지도자가 능력에 따른 공정성을 명분으로‘여성 할당제 폐지’를 주장하는 것도 냉정하고 차갑게만 들린다.

우리 청년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다들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이 자기 관점에서 그 답을 찾고 있다. 정치권은 청년을 빈자로 간주해 퍼주기식의 복지성 대책을 청년 해법으로 제시한다. 진보론자는 청년을 약자로 접근해 ‘할당제’ 등으로 우대하고자 한다. 보수론자는 청년을 강자로 보고 능력에 따라 대우해주는 공정경쟁이 청년에게 정의롭다고 생각한다.

우리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복지도 공정도 우대도 경쟁도 아닌 기회다. 그것도 아무 기회가 아니다. 청년의 눈높이에 맞는 ‘좋은’ 기회인 것이다. 현재 청년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문제의 원인은 일자리에서 주거와 교육에 이르기까지 좋은 기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에 있다.

청년 실업률이 높은 이유도 일자리 자체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일자리는 많다. 하지만 청년이 일하고 싶은 좋은 자리는 부족하다. 청년이 선호하는 직장은 경쟁률이 100대 1이 넘는다. 그러나 눈높이에 맞지 않는 곳은 사람을 구하지 못한다. 정부가 재정을 투입하는 청년 일자리 지원 사업은 정원보다 지원자가 부족하다. 원하지 않는 직장에 가기보다 취업을 포기하는 청년들도 늘어나고 있다. 구직을 포기한 20대가 2017년 27만 명에서 2020년에는 41만5000명으로 급증했다.

경쟁이 치열한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 몇 년씩 공부하며 수십 번 수백 번 지원서를 써본 청년의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누가 유리해지거나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좋은 일자리를 잡으면 분노가 일어난다.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나 젠더 이슈를 둘러싼 논란도 그 뿌리는 기회의 상실에 있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대학이 정원 채우기 어렵다고 하지만 유명 대학의 인기 학과 입학 경쟁률은 여전히 치열하다. 이런 가운데 금수저 부모 찬스를 이용한 스펙 쌓기와 추천서로 의전이나 로스쿨에 편법으로 진학하는 것이 청년들을 좌절시킨다. 관행이요 제도 탓이라고 변명하면 박탈감을 더 키워준다.

부동산 문제도 공급이 충분하다고 하지만 청년들이 원하는 좋은 주택은 부족하다. 최근에 강남의 반포 원베일리 아파트 일반 공급 청약에 20~30대가 1만7000명이나 신청했다고 한다. 가점이 낮은 20~30대의 당첨자는 2명에 불과한데도 청년세대에서 신청이 몰린 것은 좋은 주거지에서 살고자 하는 열망을 보여준다. 정부에서 공급하는 청년 주택이 이런 욕구를 충족시켜줄 리 만무하다.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롭고 잘 사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왜 청년들이 원하는 좋은 기회는 부족하기만 한 것인가? 참 어려운 질문이다. 경제성장 둔화, 낙수효과 차단, 기업규제 강화, 고용 유연성 결여, 경제적 양극화 등 수많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오늘날의 현실을 만들어 냈다. 청년들의 눈높이가 기성세대보다 높아진 것도 한가지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의 평등의식과 평준화 정책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못살던 시절을 벗어나 잘살기 위해 노력해 왔고 잘사는 기회를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는 것이 올바르다고 믿어왔다. 이런 의식이 전 분야에서 평준화 정책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하향 평준화가 조장돼 보편적 기회만 양산하게 된 것이다. 지금도 하향 평준화를 추구하는 정책과 규제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대선 후보로 나온 어느 정치인은 임금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대기업의 급여를 3년간 동결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중소기업의 급여를 대기업 수준으로 올려 임금 격차를 해소하겠다는 공약은 누구도 하지 않는다.

몇 년 전 부동산 규제가 문제됐을 때, 교수 출신의 청와대 정책실장이 누구나 강남에 살고 싶어 하지만, 모두가 강남에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발언해 논란거리가 됐다. 왜 다른 지역을 국민이 원하는 강남과 같은 주거환경으로 만들려는 정책은 없는지 궁금하다.

하향 평준화는 국민의 눈높이를 낮출 것을 요구한다. 청년들에게도 기회를 잡으려면 눈높이를 낮추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3만 달러 시대의 눈높이를 가진 청년들에게 1만 달러짜리 일자리와 주택에 만족하라 하니 냉소와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이제 하향 평준화에서 상향 평준화로 방향을 선회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청년들에게 눈높이 이상의 기회를 풍성히 만들어 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청년 문제는 영원한 숙제로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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