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 건하게 한턱낼 때는 홍탁으로

입력 2015-10-14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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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를 처음 맛본 건 세종문화회관 뒤편 식당에서였다. 전에 근무하던 신문사 선배의 단골집이었는데 홍어만 팔았다. 선배들의 권유로 크게 한 입 넣은 순간 톡 쏘는 맛과 향이 어찌나 강한지 스프링처럼 튕겨 일어났다. 미각과 후각, 촉각을 한꺼번에 깨운 그 알싸한 맛에 코가 뻥 뚫리더니 입천장이 순식간에 헐었다. 선배들은 웃음을 참느라 벌개진 얼굴로 막걸리를 건넸다. “지금 필요한 건 바로 요 막걸리여!”. 서른 즈음의 가을날 그렇게 맛들인 홍어에 중독돼 지금껏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홍어 좀 먹어 본’ 사람이라면 잘 알겠지만 묵은김치에 돼지고기와 함께 싸서 먹는 홍어에는 막걸리가 필수다. 여기에 비 혹은 눈까지 내린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錦上添花)다. 임보 시인이 “막걸리 한 사발에 홍어회 한 점, 그 홍탁이라는 유명한 전라도 음식을 아직 못 자셔 보았는가. 그랬다면 당신은 세상 헛산 것이여, 헛산 것이여”(‘홍어에 관한 한 보고’)라고 노래했을 정도다.

귀하고 값비싼 홍어 먹을 기회가 생겼다. 창간기념일이 이달인 신문사가 몇 군데 있는데, 10년·20년 장기근속상, 기자상, 칼럼상 등 상을 받은 선후배들이 한턱낸단다. 교육 전문지 후배는 “다음 주에 찐하게 한턱낼게요”라며 날을 잡으란다. 온 마음을 담아 축하할 일이다. 그런데 그 어떤 상을 받았더라도 ‘찐하게’ 내면 안 내느니만 못하다. ‘찐하다’는 ‘안타깝게 뉘우쳐져 마음이 언짢고 아프다’라는 뜻의 우리말이다. 즉, “언짢고 아픈 마음으로 산다”는 말인데 누가 그 술과 밥을 기쁘게 먹겠는가. 크게 한턱내겠다는 의도인데 잘못된 표현 때문에 자칫 욕을 먹을 수도 있다.

“거하게 한턱낼게요”라고 말하는 것도 잘못이다. 많은 이들이 ‘거하다’를 한자 ‘클 거(巨)’가 들어간 형용사로 생각해 ‘아주 넉넉하다’라는 의미로 쓰는데, ‘거하다’는 순 우리말이다. ‘산 따위가 크고 웅장하다’ ‘나무나 풀 따위가 우거지다’ ‘지형이 깊어 으슥하다’ 등의 뜻으로, 술이나 음식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술이든 밥이든 풍족하게 대접할 때에는 ‘건하다’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 ‘아주 넉넉하다’는 뜻으로, ‘술 따위에 어지간히 취한 상태’를 말하는 ‘거나하다’의 준말이기도 하다. ‘한턱내다’는 하나의 단어이므로 붙여 써야 한다.

술자리에서는 술을 상대방에게 권하고 받아 마시는 게 큰 즐거움이다. 이런 모습을 ‘권커니 자커니’ ‘권커니 잣커니’ ‘권커니 작커니’로 표현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이 세 가지 모두 잘못된 표현이다. 올바른 말은 ‘권커니 잡거니’와 ‘권커니 잣거니’다. ‘권(勸)하다’에 어미 ‘-거니’가 붙은 말(권하거니)을 줄여 쓴 ‘권커니’는 틀리게 쓰는 이가 드물다. ‘잡거니’와 ‘잣거니’가 문제인데, 어원이 불분명해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아 생긴 혼란인 듯하다. ‘잣거니’는 ‘술 따를 작(酌)’에서 온 말이라는 설이 설득력이 있다. ‘작’이 시간이 지나 ‘잣’으로 바뀌었다고 보는 견해다. ‘잡거니’는 술잔을 잡아 마시는 모습에서 굳어진 표현이나, 어원이 억지스럽다는 의견도 있다.

홍어는 이름이 참 많다. ‘본초강목’에는 태양어(邰陽魚), 모양이 연잎을 닮았다 하여 하어(荷魚), 생식이 괴이하다 하여 해음어(海淫魚)로, ‘자산어보’에는 분어(擥魚)로 나와 있다. 전북에서는 간재미, 경북에서는 가부리, 전남에서는 홍해, 홍에, 고동무치, 함경남도에서는 물개미라고 부른다. 시대와 지역을 떠나 열렬한 사랑을 받았나 보다. 맛은 코, 날개, 꼬리 순으로 매긴다. 코 부위가 가장 맛있다는 의미다. 코를 콕 하고 찌를 그맛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강렬한 암모니아향이 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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