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가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정부의 의료정책에 반대해 투쟁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임현택 전 의협 회장 집행부와 달리, 전공의 단체가 비대위에 참여하며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전망이다.
18일 박형욱 의협 비대위원장은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선출 이후 첫 공식 회견을 열고 비대위 구성과 향후 대정부 투쟁 방침을 밝혔다. 박 비대위원장은 “정부의 특별한 변화가 없다면, 비대위는 정부의 의료농단에 대해 지속적으로 저항하고 투쟁하는 길로 나갈 수밖에 없다”라고 강조했다.
비대위의 정식 명칭은 ‘정부의 의료농단 저지 및 의료정상화를 위한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로 정했다. 비대위 위원은 15명으로, 의협 대의원회 운영위원회 추천 2명, 전국시도의사회장단협의회 추천 2명,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추천 3명,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추천 3명,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 추천 3명, 위원장 추천 1명으로 구성된다.
특히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의견이 향후 비대위 활동에 대폭 반영될 예정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역시 의협 비대위 위원으로 참여한다.
이에 대해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사직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하에 위 구성안을 제안했고, 운영위원회는 재석 19명 중 찬성 18명, 반대 1명이라는 압도적인 숫자로 의결했다”라고 설명했다.
의협 비대위의 대정부 방침은 임 전 회장의 집행부와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박 비대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책임자 문책’을 거듭 요청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의협과 보건복지부 양자 협의체인 의료현안협의체에 참여했지만, 여기서 의대 정원 증원 규모는 전혀 논의하지 않았다”라며 “2000명이라는 증원 숫자는 2024년 2월 6일 조규홍 장관이 증원 발표하기 직전 열린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에서 처음 등장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의대 정원 증원 규모에 대해 협의도 하지 않고 의협과 19차례나 협의했다고 사실과 다른 보고를 한 관계자를 찾아 합당한 책임을 물어달라”라며 “2000명 증원이 과학적 근거가 있다고 윤석열 대통령께 사실과 다른 보고를 한 관계자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사직서 수리 금지명령 등 행정명령으로 전공의들의 기본권을 침해한 관계자를 찾아 합당한 책임을 물어달라”며 “복지부는 사직서 수리 금지명령으로 거의 3개월 동안 전공의들이 다른 의료기관에 취업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복지부는 수련기관이 월급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공문도 내려보냈다”라고 비판했다.
의협 비대위는 사직 전공의들의 권리 보호와 전공의 근무 환경 개선에도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 비대위원장은 현재 단국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로 재직 중으로, 비대위원장 후보로 출마했던 인물들 가운데 의대 교육 및 수련병원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박 비대위원장은 “사직 전공의들이 돌아가기 위해서는 수련 과정에서 합당한 보호가 있어야 하고, 수련 후 미래가 보여야 한다”라며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주당 최대 40시간, 노사 합의로 주당 52시간 근로할 수 있는데 전공의들은 법의 이름으로 주당 최대 88시간 일하게 만들어 놓았다”라고 지적했다.
전공의들이 의료소송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문제도 제기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전공의들은 응급실과 병동에서 밤을 새워 환자를 진료하고, 아차 하는 순간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수억에서 수십억 원의 손해배상책임을 질 수도 있다”라며 “경찰과 검찰에 불려 다니고 징역 또는 금고형을 선고받을 수도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는 개선한다고 하지만 흉내만 낼 뿐”이라고 덧붙였다.
의협 비대위는 정부의 태도 변화 없이는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의대 정원 확대부터 상식적인 대화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 비대위의 인식이다. 비대위는 정부의 의료정책을 ‘의료농단’으로 규정하고 있어, 의협과 정부의 갈등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박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상식적인 대화를 전혀 하지 않았다”라며 “정부는 의료부문에 갖가지 시한폭탄을 장착해 놓았으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먼저 시한폭탄을 멈추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이 시기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급격한 의대 증원은 10년 후유증을 낳을 것”이라며 “앞으로 그 책임은 대통령, 장·차관, 비서관들이 모두 퇴진한 후 아무도 지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정부를 신뢰할 수 있는 조치를 하고, 시한폭탄을 멈춘다면 현 사태가 풀리는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의협 대의원회는 이달 10일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대의원 224명 중 170명 찬성으로 임 전 회장 불신임안을 통과시켰다. 임 회장은 5월 취임한 뒤 약 6개월 만에 물러나게 됐다.
박 비대위원장은 13일 진행된 비대위원장 선거에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득표율 52.79%)를 획득해 당선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의협이 보궐선거를 통해 차기 회장을 선출하기 전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