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 생선전도 먹지 말라는데"…응급실 대란에 명절이 두렵다 [이슈크래커]

입력 2024-09-11 16:53 수정 2024-10-23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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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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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명절, 5일간의 긴 연휴가 찾아오지만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들썩이는 추석 성수품 물가부터 차량으로 가득 찬 귀성길, 오랜만에 마주한 가족들의 잔소리까지… 매 명절 등장하는 걱정거리지만, 이번 추석에는 사뭇 다른 우려가 깊어지고 있는데요. 바로 '병원'에 대한 우려죠.

이번 추석은 반년 넘게 이어지는 의정 갈등 속 처음으로 맞는 명절입니다.

연휴 기간에는 유동 인구와 119 신고가 눈에 띄게 늘어나 응급 의료 체계의 균열이 더 부각될 수 있습니다. 특히 면역력이 약한 영·유아, 지병이 있는 노인과 함께하는 가정의 불안감이 높아지죠.

안 그래도 최근 의료 현장에서는 응급실 의사 부족 등에 의한 안타까운 소식이 연달아 전해지고 있습니다. 응급실을 전전하다가 구급차 안에서 사망한 환자도 있고, 뒤늦은 조치로 사태가 크게 악화한 사례도 적지 않게 나타났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응급실 운영이 파행하는 가운데 4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로 내원객이 들어가고 있다. 이날 정부는 응급실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병원들을 중심으로 군의관 15명을 배치했다. (연합뉴스)
▲전국 곳곳에서 응급실 운영이 파행하는 가운데 4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로 내원객이 들어가고 있다. 이날 정부는 응급실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병원들을 중심으로 군의관 15명을 배치했다. (연합뉴스)

응급환자 줄고 사망자는 늘어…부담 커지는 응급실

2일 부산 기장군의 한 공사장에서 70대 노동자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구급대는 A 씨를 응급처치하고 인근 응급의료센터에 환자 수용 가능 여부를 물었지만, 모두 거부당했는데요. 결국, 현장에서 수십km 떨어진 대학병원에 환자를 이송해야 했죠. 추락 신고부터 병원 도착까진 1시간 10여 분이 걸렸습니다. 진찰 결과 A 씨는 등뼈 골절로 폐가 손상될 수 있어 긴급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왔지만, 병원에는 수술이 가능한 흉부외과 전문의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수술이 가능한 곳을 알아보던 중 A 씨는 사고 4시간여 만인 낮 12시 30분께 숨을 거뒀습니다.

5일 광주 조선대학교 캠퍼스에서는 20대 대학생 B 씨가 심정지 상태로 쓰러진 채 발견됐습니다. 불과 100여m 거리에 조선대병원이 있었지만, 응급실은 환자를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죠. 당시 조선대병원 응급실에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없이 외과와 정형외과 의사만 근무 중이었다고 합니다. B 씨는 인근 전남대병원 응급실로 이송됐지만, 의식 불명 상태입니다.

지난달 30일에는 서울의 한 편의점에서 쓰러진 40대 응급환자가 병원 14곳을 돌다가 구급차 안에서 사망했습니다.

응급실 대란이 전국적으로 현실화하는 모습입니다. 전공의 사직으로 인한 의료공백 기간 지역응급의료센터의 중증 응급환자 사망률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죠.

10일 국립중앙의료원이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의대 증원 등에 반발해 수련병원 전공의들이 사직한 올해 2월부터 7월까지 지역응급의료센터의 중증환자 1000명당 사망자 수는 78.6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77.0명보다 1.6명 늘었습니다.

전체 응급환자는 줄어들고, 응급환자 사망률은 높아졌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전체 응급환자는 전년 동기 대비 16.9%(411만5967명→342만877명) 줄었습니다. 응급환자 1000명당 사망자는 6.6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0.9명 늘었죠.

응급의료기관 종별로 살펴보면 권역센터에서의 사망이 지난해 6.4명에서 올해 8.5명으로 가장 많이(2.1명) 증가했습니다. 지역센터 환자는 5.4명에서 6.6명으로 1.2명 늘었고, 지역기관 환자는 5.6명에서 5.9명으로 0.3명 늘었습니다.

다만 정부는 이 같은 분석에 "사망률은 증가한 것처럼 보이지만 올해 응급실 사망 환자 수 자체는 증가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전체 응급실 내원 환자 중 중증 환자 수는 일정하게 유지됐지만, 경증·비응급 환자가 줄어들면서 모수가 감소해 사망률이 올라갔다는 겁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2∼7월 응급실 내원 환자 중 사망자는 2만3487명, 올해 2∼7월 사망자는 2만2732명으로 소폭 줄어들었다고 밝혔습니다.

▲ 9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병원 응급의료센터에 주차된 구급차에 '의사 집단행동으로 인해 병원 선정이 지연되고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 9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병원 응급의료센터에 주차된 구급차에 '의사 집단행동으로 인해 병원 선정이 지연되고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응급실 수용 거부로 재이송 늘었다…병상 찾기 '빨간불'

진료가 불가해 타 병원으로 이송된 응급 환자 비율이 높아졌다는 사실은 눈길을 끕니다. 병원이 응급환자 수용을 거부, 119구급대가 다른 병원으로 이송한 사례가 늘어났다는 거죠.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정성국 국민의힘 의원실이 소방청에서 받은 구급대 재이송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6월 10일까지 구급대가 환자를 네 차례 재이송한 사례는 17건이나 됩니다.

상반기가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지난해(16건)와 2022년(10건) 기록을 웃돌았는데요. 올해 상반기에 두 차례 재이송된 사례(78건)도 지난해 1년간(84건)의 기록을 거의 따라잡기 직전이었습니다.

전공의(인턴, 레지던트)의 병원 이탈 이후 응급의학과 전문의 혼자 당직 근무를 하는 권역센터가 늘어난 영향인데요. 중증환자마저 수용하지 못할 때가 잦아진 겁니다.

9일 제주소방안전본부에는 임신 25주 차인 30대 임신부가 조기 출산 위험으로 전원이 필요하다는 신고가 제주대병원으로부터 접수됐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제주대병원이 유일하게 신생아 중환자실을 운영했지만, 병상이 모두 찬 데다가 응급의료 공백으로 의료진도 1명만 남은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이 임산부는 소방헬기로 충남으로 이송돼 구급차를 타고 인천의 한 대학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약 440㎞의 거리를 이동한 겁니다. 다행히 건강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죠.

또 의료공백 사태 속에 올해 2월부터 최근까지 응급환자를 이송하는 구급대원들이 119구급상황관리센터에 "병원을 찾아달라"고 요청한 경우는 1197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19건)보다 131% 급증했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응급실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6일 서울 시내 한 병원 응급진료센터에서 구급대원이 환자를 구급차에 태운 뒤 통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 곳곳에서 응급실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6일 서울 시내 한 병원 응급진료센터에서 구급대원이 환자를 구급차에 태운 뒤 통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상 진료체계 구축 '동분서주'…의료공백, 추석 이후 본격화?

이 같은 수치는 응급환자들이 병원 찾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특히 추석 같은 명절에는 이동하는 인파도 많고,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면서 119 신고도 증가하기에 명절 응급실 대란에 대한 우려가 깊어집니다. 소방청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해 추석 연휴 기간 접수된 119 신고 건수는 총 99만2400건으로, 일평균 4만1853건입니다. 이는 평소 일평균 신고 건수 대비 28.5% 증가한 수치죠.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추석 연휴 응급실 이용 환자는 전주 대비 72% 증가했습니다.

이에 정부는 물론 지자체들도 필수 의료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

11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부는 이날부터 25일까지 2주 동안 '추석 명절 비상 응급 대응 주간'을 운영해 중증·응급환자 중심으로 의료 공백이 없도록 총력 대응합니다. 경증 환자가 대형병원 응급실이 아닌 지역의 병·의원을 이용하도록 하고, 대형병원 응급실은 중증·응급환자 위주로 진료를 볼 수 있도록 대응책을 마련했죠.

각 지자체는 추석 연휴 기간 응급실 진료상황실을 운영하며 응급 현황을 지속해 모니터링할 방침인데요. 비상 의료 관리 상황반을 가동하고 당직 병·의원을 확대하는 등 비상 진료체계 구축에 나섭니다. 특히 소방 구급 상황과 연계하면서 최적 시간 안에 중증 응급환자를 이송하고 전원하는 데 집중할 방침입니다.

경북대병원과 계명대동산병원 등 대구시 6개 응급의료센터는 추석 연휴 기간 의료진을 보강하고, 강원대병원은 7일부터 주말과 공휴일에만 응급의료센터 진료를 오후 9시까지 3시간 연장 운영하기로 했는데요. 지자체들은 특정 응급실로 환자가 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대형병원은 중증 응급 환자 위주로 받고, 그 외 응급환자는 2차 병원으로 적극 유도할 계획입니다.

비응급 경증 환자는 응급실 방문 자제를 권고합니다. 대신 연휴 기간 문 여는 동네 병·의원과 약국 수를 늘렸는데요. 연휴 기간 응급의료기관·시설은 매일 전국 518곳이 가동되고, 하루 평균 7931곳의 병·의원이 문을 엽니다. 지난 설 연휴 기간 운영한 당직 병·의원(하루 평균 3643곳)보다 갑절이 넘는 수준이죠. 병·의원 진찰료와 약국 조제료의 가산율은 연휴 기간 한시적으로 50% 수준으로 인상됩니다.

연휴 기간 문 여는 병·의원, 약국에 대한 정보는 서울시 2024 추석 연휴 종합정보 홈페이지, 25개 자치구 홈페이지, 응급의료포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의료공백으로 인한 피해가 추석 이후 본격화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옵니다.

의사 출신인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은 9일 JTBC '오대영 라이브'에 출연해 "연휴에 가급적 멀리 가지 말고, 벌초도 자제하고, 생선전 같은 음식도 먹지 않는 게 좋다는 이야기를 지인들과 주고받을 정도로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멀리 이동하면 교통사고 위험이 따르고, 벌초하면 벌에 쏘일 수 있고, 생선전을 먹다가 가시가 목에 박힐 수 있는 만큼 이번 추석 연휴에는 응급실을 이용하기 여의치 않으니 선제적으로 응급상황을 만들지 않는 게 최선이라는 소리로 풀이되죠.

이 의원은 국회의원 당선 직전인 올해 초까지 순천향대 천안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에서 10년 동안 일했는데요. 그는 "병원에도 환자가 몰리는 시기가 있는데 그게 대체로 가을부터"라며 "가을이 되면서 소아와 성인 가리지 않고 온갖 호흡기의 질환들이 창궐하기 시작하는데 노약자의 경우 별것 아닌 호흡기 질환도 중증으로 이행하는 경우가 많아 대단히 위험할 수 있다"고 부연했습니다. 즉 추석 연휴 이후 의료공백으로 인한 피해가 본격화할 수 있다는 겁니다.

정부와 지자체도 응급실 대란을 막기 위해 힘을 쏟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되지 못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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