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 생명이 나타나는 최소 크기 ‘콜로이드’

입력 2024-08-2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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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노벨 화학상은 양자점을 개발한 사람에게 돌아갔다. 색채는 특정 주파수를 흡수하는 성분에 의해 주로 결정된다. 수국은 토양의 산도(pH)에 따라 꽃색이 바뀌는데 성분의 구조가 산도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자점은 물질의 성분과 무관하게 물질의 크기로 결정된다.

카멜레온도 물질의 성분과 관련 없이 구조 변화로 변색을 일으킨다. 성분보다는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대표적 현상은 빛의 반사이다. 반사는 입사각에 의해 결정된다. 유리로 만든 거울이든 물로 채워진 연못이든 입사각만 적절하면 반사된 달은 나타난다.

마이크로미터 크기에서 생명현상 발현

양자점이나 카멜레온의 변색 현상은 나노미터(nm)의 크기에서 일어나고 달의 반사는 마이크로미터(μm) 크기 이상에서 관측된다. 마이크로미터는 나노미터의 1000배이다. 이 정도의 크기 물질을 콜로이드라고 하며 구름, 연기, 황사, 먼지, 절리, 크림, 실리카겔 등이 포함된다. 콜로이드를 현미경으로 확대하면 바탕 재질에 콜로이드 재질이 떠 있다. 바탕과 콜로이드 재질에 따라 졸, 젤 등으로 구분하고, 발생 장소에 따라 황사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입자가 크고 무거우니 땅에 떨어져야 하지만 바탕 물질인 공기나 물의 유동으로 잘 가라앉지 않는다. 고비사막에서 발원한 황사는 우리나라를 거쳐 태평양까지 날아간다.

양자점에서 색 변화가 일어났듯이 콜로이드에는 생명현상이 일어난다. 우리는 중등교육을 통해 세포에서 생명현상이 일어남을 알고 있다. 세포 크기 혹은 내부의 소포체, 미토콘드리아 등의 소기관이 생명의 최소 크기이고 바로 콜로이드 크기이다.

양자점 색변화는 빛에 반응하는 전자의 운동이지만 콜로이드의 생명현상은 분자들의 움직임이다. 분자는 전자보다 1000 배 이상 크고 이동은 느리다. 분자의 거동을 허용하려면 공간이 있어야 하지만 물질이 잘 섞이려면 공간이 너무 커도 문제다. 콜로이드 공간이 생명현상이 일어나기 위한 적절한 크기라고 유추할 수 있다.

단순히 콜로이드 크기가 되었다고 생명현상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구름이나 연기에서는 생명현상이 없다. 생명이 없는 콜로이드는 표면과 내부의 구성 성분이 동일하지만 생명이 있는 소기관은 표면과 내부가 다르다. 생명체는 비누방울 같은 막을 지녀 내부와 외부를 구분한다. 막을 통해 분자들이 선택적으로 들락거리면서 생명현상은 발현된다.

올 4월 포스텍 화학공학과 이효민 교수 연구진은 미세유체기술을 통해 소기관 막을 제작하는 논문을 국제 학술지인 ‘어드밴스트 사이언스’ 온라인 판에 게재했다. 이 막은 뱀처럼 긴 고분자 물질로 되어 있는데 머리와 꼬리는 물에 친화적이고 몸통은 기름에 친화적이다. 수천만 마리의 뱀이 머리를 나란히 하여 운동장에 쭉 누우면 육상 트랙이 형성되듯이 고분자 막도 그렇게 형성되었다. 일일이 뱀을 잡아다 배열을 만들 수 없으니 포스텍 교수진은 미세한 물방울을 만드는 유체기술을 적용했다.

고분자 막 통해 특정분자 선택적으로 수용

논문은 고분자 막을 통해 특정 분자들이 선택적으로 들어가고 나갈 수 있음을 보였다. 개구리와 두꺼비를 특정 분자라고 가정하면 개구리는 뱀의 막을 통과하지 못하고 두꺼비는 통과하여 새끼를 낳는다. 막을 통해 물과 산소와 영양분도 들어간다. 소기관은 들어온 물질을 태워 에너지를 얻고 폐기물을 막 밖으로 배출한다. 소기관이 손상을 입었으면 약물을 막으로 보내 치료할 수도 있다. 막은 생체물질이 아닌 합성된 약물을 통과시켜 주지 않으므로 약물을 위장시킬 필요도 있다. 개구리 대신 두꺼비 피부로 약물을 싸 뱀의 막을 통과할 수도 있다.

과학자들은 양자점 발견으로 익숙하여 외면했던 물질의 크기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콜로이드도 덕분에 호출되었다. 콜로이드는 생명의 시발점이고 내부에는 아름답고 신기한 기관들이 많다. 알프스 언덕의 집들처럼 아름답다. 직접 손으로 이 기관을 건축할 수는 없지만 물을 주고 온도를 올리고 압력을 가하면 집들이 스스로 생겨난다. 화학자들은 200년 동안 찾아낸 분자 합성법을 콜로이드에 적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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