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분쟁조정 기준안이 발표된 가운데 은행권이 배상 방안을 놓고 고심에 빠졌다. 금융당국의 분쟁조정기준안을 수용해 자율배상을 결정하려니 배임 문제가 불거질 수 있고 받지 않을 경우 과징금 등 불완전판매 관련 제재 등으로 연결될 수 있어서다. 당국의 배상안을 토대로 각 증권사들이 시뮬레이션한 결과 배상금액만 1조~2조원 대에 달할 것이란 분석이 나와 가뜩이나 영업여건이 어려운 은행들에게는 악재가 될 것으로 우려된다.
13일 금융당국 및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H지수 ELS 판매 잔액은 18조8000억 원이며 이 중 은행 판매 잔액은 15조4000억 원이다. 지난달 말 H지수(5678pt)가 유지된다고 가정한 올해 예상 손실금액은 약 5조8000억 원, 예상 손실률은 약 38%이다.
DB금융투자는 은행권의 올해 예상 손실금액은 약 5조 원이고, 은행의 기본배상비율 20~30%를 고려한 은행권 배상 규모는 약 1조~1조5000억 원 수준으로 추정했다. 다만, 실제 은행별 배상비율은 개별 투자자의 상황과 홍콩 H지수 수준 등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봤다. 실제 배상비율이 30~40%로 올라갈 경우 은행권의 배상규모는 2조 원을 훌쩍 넘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광영 DB금융투자 연구원은 “기본배상비율 최소치인 20%를 가정하면 올해 KB의 경우 5400억 원, 신한 1700억 원, 하나 1000억원 수준의 비용 부담이 예상된다”며 “이익 축소와 함께 운영리스크 증가로 자본비율 하락이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SK증권은 최저 기본 배상비율 20%에 공통 가중 10%포인트(p)(모두 대면이라고 가정)를 적용한 배상비율 30%만을 가정할 경우 가장 익스포저가 많은 KB 금융이 약 7000억~8000억 원, 신한·하나가 각각 약 1000억~2000억 원 규모의 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가중 요인 등을 감안해 배상비율이 평균 40%까지 올라가는 경우 KB 금융 약 1조 원, 신한·하나가 약 2000억~3000억 원 규모를 부담할 것으로 예상했다.
설용진 SK증권 연구원은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 시점(2021년 3월 25일 전후), 고객별 가중·차감 항목 적용 수준에 따른 영향이 관건이지만 우리은행을 제외하면 대형 은행 중심
으로 일정 수준의 부담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베스트투자증권은 은행권 전체 배상규모가 1조7000억 원에서 2조 2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고 NH투자증권은 평균 배상비율을 40%로 가정해 국민은행이 약 1조 원의 배상비용을 감당해야 할 것으로 예상했다.
은행들은 금융감독원의 조정안 수용 여부 결정을 놓고 연일 대책회의 및 법적 검토를 진행 중이다. 다만, 배상안을 토대로 자율 배상을 할 경우 은행 잘못을 인정한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주주들이 경영진을 상대로 배임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당국은 배임 이슈와는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정말 명확하게 (당국이) 인식하고 공감할 정도의 배임 이슈가 있고 이게 당국이 고칠 수 있는 분야에 있으면 개선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