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왜 ‘이승만 양아들’을 사칭했나…한국 현대사가 남긴 씁쓸한 이면

입력 2024-02-23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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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부터)이강석, 강성병(출처=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꼬꼬무)’ 방송 캡처)
▲(좌측부터)이강석, 강성병(출처=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꼬꼬무)’ 방송 캡처)
▲(출처=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꼬꼬무)’ 방송 캡처)
▲(출처=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꼬꼬무)’ 방송 캡처)

22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황태자와 찰리 채플린’이라는 부제로 서로 닮았지만 다른 신분인 두 남자의 이야기를 전했다.

1957년 8월 21일, 강력한 슈퍼태풍인 ‘아그네스’가 한반도를 휩쓸고 갔다. 특히 가장 큰 피해를 본 경상북도에서는 태풍으로 인한 피해 복구가 한창인 가운데 한 청년이 이 일대를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 청년의 이름은 ‘이강석’. 본인을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 ‘이강석’이라고 소개한 남자는 경북 경주의 한 다방에 있던 경주 경찰서장과 처음 만났다.

이강석은 자유당의 실세로 이승만 정권의 2인자 이기붕 국회의장의 장남이다.

이기붕 의장은 이 대통령의 82번째 생일날, 자신의 장남을 입양하도록 했다.

이 의장은 슬하에 자녀를 가지지 못한 것을 한으로 생각하는 이승만 대통령을 위해 이런 일을 했던 것.

이에 이강석은 단숨에 대한민국의 황태자로 불리며 당시 대한민국 권력 3인자로 올라섰다.

자신을 이강석이라 소개한 청년 “아버지의 명을 받아 지방관리들을 시찰하기 위해 비밀리에 내려왔다”라고 했고, 이 말을 들은 경주 경찰서장은 황송하기만 했다.

경찰서장은 “귀하신 몸이 어찌 홀로 오셨냐”며 그를 극진히 모셨다. 그리고 이강석의 암행시찰은 경주를 시작으로 인근의 지역으로 이어졌다.

영천과 안동, 봉화, 칠곡 안동으로 이어지는 순행에 고관들이 버선발로 달려 나와 극진하게 대했고, 황태자의 등장에 지방 관리들은 신분 상승을 위한 기회를 잡아보겠다고 안달복달했다.

청탁과 함께 뇌물을 바치는 고관들은 3일간 이어진 이강석의 경북 순행을 보필했고 마침내 차기 내무부장관인 경북도지사와 대면까지 하게 됐다.

하지만 이강석의 정체는 3일 만에 탄로 났다. 사실 그는 진짜 이강석이 아니었다. 그의 거짓말은 계속되었고 꼬리는 자꾸만 길어지자 자신을 모시던 이들에게 “이 사람들이! 절대 비밀로 하랬더니! 대체 누가 소문을 낸 거요!”라며 도지사와의 대면을 피하려 했으나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이근직 경북도지사와 만난 가짜 이강석은 그 자리에서 발각됐다. 이근직 경북도지사의 큰아들이 ‘진짜’ 이강석과 동창이었다. 이 지사는 당시 수해복구를 지휘하느라고 그 현장에 있었고, 관저에 이강석이 나타났다는 얘기를 듣고 달려왔었다.

평소 회의 및 행사로 자주 서울에 올라가는 이 지사는 관저에서 마주한 이강석에 의문을 품었고, 아들을 불러 대질을 시켰다.

그의 아들은 “저놈은 강석이가 아닙니다. 가짜예요!”라고 외쳤고, ‘이강석’을 사칭한 사기극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가짜 이강석의 진짜 이름은 강성병. 강성병은 연이어 대학입시에 떨어지고 집안 형편도 급격히 나빠졌다. 방학 때마다 고향을 찾아오는 대학생들을 보며 심한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돼.

자기도 보란 듯이 출세하겠다며 집을 나간 뒤로 소식이 끊긴 뒤 이강석 행세를 하며 세상에 나타났다. 평소 지인들은 그에게 “아강석과 닮았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전했다.

그를 검거한 대구지검은 이 사건을 극비로 수사했으나 한 기자에게 꼬리를 잡히고 말았다.

그렇게 가짜 이강석 사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공판이 열리는 날, 대구법원에는 사상 유례없는 인파가 몰렸다.

천 명이 넘는 인파가 몰리면서 법정 안은 창문을 넘어들어온 사람들이 검사석 옆까지 들어찼다. 의자들 반이 넘게 부서지고 판사의 법복이 찢어질 정도였다.

왜 이강석을 사칭했냐는 판사의 질문에 강성병은 한 신문에 ‘근무 중 낮잠 자는 헌병의 뺨을 치는 위세를 보였다’라는 내용의 기사를 보고 그를 사칭하겠다는 결심했다고 답했다.

이어 고관들의 추태를 낱낱이 폭로했다. 자신에게 금품을 안겨주며 영전을 부탁했던 일도 폭로했다.

이어 “내가 만일 간첩이었다면, 저 서장이나 고관들은 어떻게 됐을까요?”라며 통렬한 비판을 가했다.

그러면서 “권력이란 게 진짜 좋더군요. 몸소 체험하고 나니 그저 놀랐을 뿐입니다. 할리우드 같으면 내 연기에 60만 불 정도는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연기료 대신 벌을 받게 됐지 뭡니까?”라고 반문했다.

또 “내가 시국적 악질범이면, 나에게 아첨한 서장, 군수들은 시국적 간신배들이오!”라며 자신을 향한 비판을 되받아쳤다.

이에 당시 언론은 그에 대해 ‘찰리 채플린’의 제자가 될 법한 풍자가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민심도 강성병의 편이었다. 자유당의 위세가 높던 당시 그 덕에 마음껏 비웃을 수라도 있으니 그에게 고마워하기도 했던 것. 이후 강성병은 징역 10개월을 받았고, 귀하신 몸이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해당 사건이 일어나고 3년 후 3.15 부정 선거가 일어나고 이승만과 이기봉에 대한 반발심이 극에 달아 4.19 혁명이 일어났다. 정부는 무력으로 시민들을 진압했고 혁명은 더욱 확대되고 거세졌다.

결국, 1960년 이승만의 하야가 결정되었고, 이승만의 하야 성명 발표 이틀 후 충격적인 소식이 이어졌다. 이기봉 일가가 모두 사망한 것이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강석이 양친을 먼저 쏜 후 동생을 살해하고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특히 이강석은 가슴과 머리 두 군데 총상이 남아있었다고 전해졌다. 권력의 정점에 있던 한 가족이 일순 비극을 맞았다.

이승만은 아들과 이기붕의 죽음에 슬퍼했다. 그리고 이들의 죽음을 둘러싸고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이기붕 일가 사망에 관한 어떤 자료도 남아있지 않아 어떤 것이 진실인지는 현재에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강석과 닮은 강성병도 1963년 대구의 한 술집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충격을 안겼다.

이강석 사칭 사건을 최초 보도했던 김시열 기자는 “파리한 얼굴을 한 강성병 군이 신문사로 나를 찾아왔다. 이강석 군의 자살에 조의를 표하는 예의를 잊지 않고 있었다. ‘취직도 안 되고 살기가 귀찮다’라고 몹시 지쳐있었다”라고 회고했다.

이어 “‘힘을 내라’는 격려에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이며 힘없이 사라진 모습이 그를 본 마지막이었다. 그로부터 얼마가 지난 어느 날,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저 두 청년의 명복을 빌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서로 닮은 얼굴로 태어나 다른 삶을 살다가 같은 운명을 맞이한 두 청년. 한국판 ‘왕자와 거지’의 씁쓸한 결말이다.

마지막으로 방송에서는 달콤한 권력의 맛을 알았던 두 사람이 어떤 마음을 가졌을지 각자의 생각을 나누어 눈길을 끌었다.

이날 꼬꼬무에는 장현성의 절친한 대학 동기이자 최고의 티키타카를 자랑하는 개그맨 ‘김진수’가 이야기 친구로 찾아왔다. 예상을 뒤엎는 전개에 박장대소하던 그는 장현성이 내민 사진을 보며 남산에 이런 동상이 있었냐며 의문을 갖기도 했다.

SBS ‘골때녀’에서 맹활약을 펼친 이영진 배우가 장성규의 이야기 친구로 첫 등장 했다. 축구 연습으로 손목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어느새 이야기에 푹 빠져든 이영진은 가짜 이강석의 사진을 보고는 진짜 이강석과의 높은 싱크로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2024년 활발한 활동을 예고한 가수 청하가 장도연의 이야기 친구로 오랜만에 ‘꼬꼬무’를 찾았다. 가짜인 것을 몰라보고 아첨하는 관리들을 보며 웃픈 표정을 짓던 청하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이야기의 엔딩을 듣고 나서는 안타까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한편,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는 매주 목요일 밤 10시 20분에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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