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안하고 100년 가는 '장수명 주택' 왜 없나…“비싼 건축비, 노후 설비 교체 문제”[갈림길에 선 안전진단②]

입력 2024-01-16 06:00 수정 2024-01-16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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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연한이 임박한 1기 신도시 일대 아파트 단지 전경. (출처=연합뉴스)
▲재건축 연한이 임박한 1기 신도시 일대 아파트 단지 전경. (출처=연합뉴스)

최근 정부가 준공 후 30년이 지난 아파트의 안전진단 규제 완화 등 '재건축 패스트트랙'을 내놓은 가운데, 국내에서도 유럽처럼 재건축 없이 장기간 사용할 수 있는 '장수명 주택'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현재 국내에선 높은 건축비 등을 이유로 장수명이 가능한 기둥식 구조의 아파트를 찾아보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민간 분양사업자들에게 적절한 인센티브가 지원돼야만 재건축 없는 건물 확대가 가능하다고 봤다.

16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유럽의 주거 건물 수명은 짧게는 80년에서 길게는 120년 이상으로 매우 긴 편이다. 반면 국내 공동주택의 수명은 채 50년 도 미치지 못한다.

실제 국내 아파트 재건축 연한은 30년이다. 준공 후 30년만 지나도 거주가 어려울 정도로 불편함이 커지고, 건물 노후도가 심해진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재건축은 넘어야 할 절차가 많아 사업 기간이 빠르면 7년, 길게는 십여 년 이상 걸린다. 재건축이 필요 없는 장수명 주택 공급의 필요성이 커지는 이유다.

국내에서도 장수명 주택 도입을 위한 움직임이 있지만, 공공 영역에 머물러 있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는 2022년 2월 재건축 없이 100년간 쓸 수 있는 분양주택을 짓겠다며 '백년주택' 슬로건을 발표했다. 기존 SH공사 아파트보다 좋은 품질로 짓기 위해 국토교통부의 '기본형 건축비'가 아닌 '서울형 건축비' 적용 계획도 밝혔다.

전문가들은 장수명 주택 공급이 더딘 데는 설비 노후화 문제가 자리한다고 분석했다. 건축물의 수명이 오래가려면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내구도를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선 기둥 없이 슬래브의 무게를 지탱하는 '벽식 구조'가 아닌, 기둥을 세워 무게를 지탱하는 '기둥식 구조'로 시공해야 한다. 국내에 지어진 아파트, 공동 주택 대부분은 벽식 구조로 세워졌다.

문제는 온돌, 상하수도 등 설비 파이프가 노출된 기둥식 구조와 달리, 벽식 구조 건물은 파이프가 콘크리트 내부에 묻혀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준공 후 수십 년이 지나 해당 설비를 교체하려면 콘크리트를 허물고 다시 작업해야 한다. 결국 재건축 등 정비사업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란 단국대학교 석좌교수(초고층빌딩 글로벌 R&BD센터장)는 "장수명 주택이 어려운 이유는 설비 파이프들이 콘크리트 내부에 묻혀 있어 노후해도 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며 "처음부터 기둥식 구조로 시공하거나, 벽식 구조일지라도 바깥으로 노출해 마감하는 것이 장수명화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민간 분양사업자들의 수익성 문제도 있다. 장수명이 가능한 기둥식 구조로 건물을 지으면 건축비가 늘어나고, 평면 변경 등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장수명 주택은 일반 주택과 비교해 공사비용이 3%에서 6%까지 더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자로선 높은 건축비를 들여 장수명 주택을 시공해야 할 유인이 적다. 높은 공사비는 분양가 상승으로 연결되는데, 아파트 등 공동주택은 분양가 상한제 등으로 분양가 산정에 제한이 있다.

또 정부가 정해 놓은 기본형 건축비로는 장수명 주택을 건설해 충분한 수익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현재 장수명 주택은 건폐율·용적률 최대 15%의 인센티브를 받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게 중론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민간분양사업자는 장수명 주택을 지어야 할 유인이 적다. 높은 건설비용이 투입되는 데 반해 기대할 수 있는 수익이나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란 교수는 "장수명이 가능한 기둥식 구조는 보가 지나가야 해서 층고가 높아진다. 그만큼 건축비용이 늘어날 소지가 크다는 뜻"이라며 "민간사업자들이 장수명 주택을 짓도록 하기 위해선 용적률을 크게 완화를 시켜주는 등 정책적으로 다른 인센티브가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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