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에 문화예술 입혀 도시 되살려
연구·전시·공연 통합해 이종간 협업
英 브리스톨 워터셰드
예술·기술 결합해 해외관광객 유치
오스트리아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세계 최대 아트축제…지역경제 살려
아트테크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지금, 유럽에서는 예술과 과학을 중심으로 한 창작분야가 30~40년 전부터 일찍이 태동하여 현재는 그 영역대를 무한 확장하고 있다.
프랑스는 예술과 과학의 협업을 지원하면서 예술가와 비예술가 간의 융복합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는 유럽 문화예술 강국 중 하나다. 프랑스에 손꼽히는 아트테크 전문 기관으로 파리에 위치한 ‘르라보라투와(Le laboratoire·실험실)’가 유명하다. 이곳은 아트테크 분야의 연구 지원은 물론 전시와 공연 기능을 통합한 문화예술재단으로 예술, 과학, 공학 종사자들은 전문적인 자기 분야 외에도 타분야의 학습과 토론을 통한 예술과 이종간 협업을 펼치고 있다.
연구에 따른 결과물로 새로운 작곡, 생물기후건축 전시회 등을 개최하는 등, 대중과 함께 공유하고 토론하는 실험적 예술 행사를 주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최근에는 예술과 유전자 분야의 생물학적 융복합 실험까지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초창기에는 예술이 기술에 지나치게 부수적으로 결합했던 문제점이 지적되곤 했다. 르라보라투와의 파리 갤러리는 새로운 융복합 실험은 물론 대중과의 교류 및 소통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영국의 최초 미디어센터인 브리스톨 워터셰드(Bristol Watershed)는 예술, 건축, 문화를 접목한 다양한 융복합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기관이다. 예술을 통한 도시재생 성공 사례로 손꼽히는 브리스톨에 위치한 이 미디어센터는 과거 세계 각국과 무역하던 브리스톨 항구 인근에 지어진 창고를 재건축하여 문화예술복합 공간으로 활용 중이다.
2010년 국제미래포럼 보고서에 따르면 워터셰드는 다양한 시장경제 속에서 발달하는 창의적 생태계 모습을 하고 있으며, 새로운 예술작품과 과학 발명품을 동시에 구축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영국의 창조산업을 이끌고 있는 이곳은 예술과 기술을 결합해 도시의 공용 공간을 재미있게 변화시키는 ‘플레이어블 시티(Playable City)’, 스마트폰으로 도시의 공공시설물과 메시지를 실시간으로 주고 받을 수 있는 ‘셰도잉(Shadowing)’등의 프로그램이 유명하다. 브리스톨 도시 자체가 아트테크를 통하여 도시경제혁신의 주체가 되었고,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워터셰드가 펼치는 프로젝트의 일원이 된 셈이다.
영국 잉글랜드예술위원회의 주도 아래 다양한 민간기관과 기업들이 이 기관과 적극 협업하고 시민들의 지속적인 협력을 바탕으로 영국 전역은 물론 해외 관광객의 발길까지 이끌어 내면서 브리스톨 지역 경제 살리기에 일조 하고 있다.
모차르트와 베토벤 등 불멸의 음악 혼이 살아 숨쉬는 오스트리아에서는 세계 최초, 최대 규모의 아트테크페스티벌이 매년 개최된다. 올해로 45년을 맞이한 아르스 일렉트로니카(Ars Electronica)는 예술과 기술 그리고 사회를 위한 축제라는 모토로 1979년 공업도시 린츠에서 시작되었다. 처음엔 2년에 한 번씩 개최하다가 1986년부터 매년 개최로 변경했다. 해마다 9월에 열리는 이 페스티벌에는 예술가, 과학자는 물론 다양한 연구기관들까지 합세하여 우리의 삶에 예술이 어떤 가치와 영향을 끼치는지 알리고 새로운 미래 예술의 방향성을 대중에게 널리 제시한다.
행사명에서도 보여지듯 최초에는 전자 음악을 발표하는 프로젝트성 공연으로 출발한 이 행사는 20명의 예술가 및 공학자들이 주축이 돼서 출범했다. 그러나 2019년에는 무려 50여 개 국가에서 1450여 명의 예술가, 과학자, 엔니지어 등이 참여했고, 11만 명이 넘는 전 세계 관람객들이 방문하여 성황리에 마쳤다. 미디어아트페스티벌의 발전이 문화와 관광분야로까지 확장되어 도시경제 발전을 이끈 성공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예술을 통한 유럽 도시재생의 성공요건으로 첫째, 예술의 가치부여가 남다르다. 유럽에서는 예술을 미래산업을 이끌어갈 영감의 원천으로 여기고 각 산업의 미래 발전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칠 중요한 가치산업 분야로 분류하고 있다. 도시별로 짧게는 10년부터 길게는 40년 넘게 전 세계 아트테크 분야를 선도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런 예술의 가치 부여가 한몫을 했다.
두 번째로 다양한 인적 지적 소통과 교류의 기회가 많다. 세계 각지의 전문연구자, 예술가들과 인적 교류는 물론이거니와 전시, 공연, 레지던시, 랩, 콘퍼런스, 워크숍, 포럼, 디지털콘텐츠 등 아트테크와 관련한 전시 기획 및 연구진의 성과 수집 등을 꾸준히 이어갈 교류의 장이 많다는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각기 다른 분야의 예술가, 비예술가 전문가들이 경계를 허물고 시민과 함께 예술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아트테크가 선도해 나가야 할 지향점이다.
마지막으로 일회성 전시기획과 아카이빙이 아닌, 축적된 결과를 다른 분야에 확대 적용할 수 있는 거점 공간이 있다. 린츠의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미디어페스티발의 경우만 봐도 여느 페스티벌처럼 휘발성 이벤트로 치부되지 않고 ‘미래 예술을 위한 미술관’이라는 거점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서 페스티벌의 자료들은 언제든 시민 열람이 가능하다.
다양한 네트워크 활용의 장으로서, 미래예술의 소장과 연구 그리고 교육의 장으로서의 역할까지 해내는 거점공간이 있어 전 세계인의 관심과 사랑을 지금까지도 꾸준히 받으면서 도시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아트테크 분야가 비약적으로 성장하여 전국 단위에 크고작은 미디어아트 미술관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제주도의 아르떼뮤지엄과 빛의 벙커는 물론 울산시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산하의 GMAP 등이 대표적이다. 앞으로도 계속 성장해 나갈 국내 아트테크 분야의 노하우가 예술가와 비예술가들의 지속적 협업을 통하여 축적되고 전시기획 및 운영자료들도 시민들과 함께 공유되고 토론되길 기대한다.
백남준포럼 대표·유럽문화예술콘텐츠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