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업체들 대용량 가성비 제품 출시 봇물
원달러가 치솟고, 주가는 곤두박질 친다. 불황에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짠테크’와 ‘무지출 챌린지’와 같은 절약형 소비가 유행이다. 보다 신선한 제품을 찾던 소비자들은 유통기한이 길고, 용량이 커서 오랫동안 보관해 먹을 수 있는 상품으로 눈을 돌린다. 그동안 1인 가구 공략에 힘 쏟던 유통업체들도 대용량 상품으로 라인업을 강화해 고객 잡기에 나섰다.
위메프는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25일까지 최근 한 달간 주요 대용량 생필품 거래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1% 늘었다고 28일 밝혔다. 상품별로는 상대적으로 유통 기한이 길어 장시간 보관이 용이한 상품들의 증가세가 돋보였다. 대용량 치약(378%), 대용량 비누(69%), 대용량 샴푸(15%) 등의 위생용품과 대표적인 생활용품인 대용량 세제(78%)·휴지(63%)의 거래액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대용량 커피(215%)와 대용량 과자(31%) 등 기호식품도 높은 가성비로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1인 가구가 주 고객인 편의점에서도 느낄 수 있다. 편의점 CU에서는 이달 1일부터 14일까지 페트병 맥주 매출 신장률은 14.2%로 집계되며, 캔(8.8%)과 병(9.2%)을 앞질렀다. 즉석 원두 커피에서도 라지 사이즈와 일반 사이즈의 비중은 72%대 28%로 나타났다. 매출 신장률도 라지 사이즈가 54.7%로 일반 사이즈(42.6%)보다 컸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유통업계의 최대 화두는 ‘1인 가구’였다. 소용량과 소분 판매가 대세를 이뤘지만, 최근 경기 불황은 소비 습관마저 바꿔놓고 있다. 신선함을 우선시했던 소비자들은 용량 대비 가격대가 저렴한 대용량으로 눈을 놀리고 있는 것이다.
실제 최근 들어 식품업체들은 대용량 제품을 속속 선보이는 추세다. 전날(27일) 롯데칠성음료는 대표 RTD 커피 브랜드 ‘레쓰비’의 500㎖ 대용량 버전 ‘레쓰비 그란데 바닐라블랙’ 출시 소식을 알렸다. 레쓰비 시리즈의 대표 제품인 레쓰비 마일드 캔커피(160㎖)가 온라인몰과 대형마트에서는 30개입 상품이 100㎖ 당 250원 내외에 팔리고 있는 것과 달리 이번 신제품은 100㎖ 당 200원 내외로 가성비가 높다.
카페 프랜차이즈 감성커피도 가격에 대한 부담은 낮추고 용량은 늘린 ‘대용량’ 1ℓ 보틀 음료 6종을 출시했다. 기존 기본 사이즈 대비 용량에 500㎖가 추가돼 여러 명이 나눠 마실 수 있으며, 뚜껑이 있는 병 형태로 포장과 남은 음료 보관도 훨씬 편하고 세척 후 용기를 재사용할 수 있다.
주류 업계도 대용량 출시에 한창이다. 하이트 진로는 이달 초 ‘청정라거-테라’의 페트 라인업을 확대해 테라 1.9ℓ 신규 페트를 내놨다. 이에 따라 테라 페트는 기존의 1ℓ, 1.6ℓ 맥주 페트 제품과 함께 총 3종의 대용량 라인업을 갖추게 됐다. 오비맥주는 용량은 늘리고, 용량당 가격은 줄인 2ℓ 용량 신제품 ‘카스 2.0 메가 페트’(Mega PET)를 출시했다. 기존 1.6ℓ 용량의 카스 페트 제품에 비해 용량은 400㎖ 늘어나고, 용량당 가격은 보다 저렴하다.
불황형 소비는 대용량 소비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비싸진 외식 대신 집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수요가 늘면서 밀키트와 유통업체의 PB(자체 브랜드) 제품 수요도 늘었다. 홈플러스의 올해 1월 13일부터 이달 18일까지 PB 냉장 간편식의 온라인 매출은 76% 증가했고, ‘시그니처 제로 콜라·사이다’ 등을 포함한 PB 탄산음료와 PB 시리얼 온라인 매출은 각각 231%, 176% 치솟았다.
이에 반해 외식 배달 수요는 줄었다. 아이지에이웍스의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배달의민족과 요기요, 쿠팡이츠 등 배달 주문앱 3사의 월간 이용자 수는 지난 7월 3199만9873명으로, 2월(3586만4693명) 대비 386만 명 감소했다. 통상 비성수기로 여겨진 봄철(3~5월) 대비 성수기인 여름철(6~7월)과 비교해 성수기 시즌에 오히려 이용자 수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배달비 상승과 함께 높아진 외식비 부담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양산빵 매출도 치솟고 있다. 올해 2월 출시된 SPC의 포켓몬빵은 최근 8000만 개 팔매를 돌파했고, GS25의 지난 1월 PB빵 브랜드 ‘브레디크’를 출시한 후 3000만 개를 팔아치웠다. 작년 10월 첫 선을 보인 GS25의 쿠키런빵의 판매량도 1400만 개에 달한다. 업계 안팎에서는 캐릭터 빵 열풍 외에도 양산빵의 품질이 높아졌고, 시중 베이커리에서 파는 빵제품 가격이 높다는 점을 주요 원인으로 보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소비자들의 관심사는 생활 수준을 유지하면서 지출 비용을 어떻게 줄일지에 초점이 잡혀있다”면서 “높은 가격의 베이커리 빵 대신 양산빵 판매가 늘고, 대용량 제품과 PB 제품이 잘 팔린 것도 불황이 영향 미쳤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