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문화재, 그리고 아파트

입력 2021-11-0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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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의 도시로 유명한 영국 리버풀 해양산업 도시가 지난 7월 세계문화유산에서 제외됐습니다. 영국 브리튼 섬의 서부 항구도시 리버풀은 18~19세기 세계 무역의 중심지로 역사적 보존 가치를 인정받아 2004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는데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최근 리버풀시가 추진하는 재개발로 인해 기존 경관과 역사적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이유로 세계유산 목록 삭제를 결정했죠.

그동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가 퇴출당한 사례는 리버풀 말고도 오만의 아라비안 오릭스 보호구역, 독일 드레스덴 엘베 계곡 등 세 차례가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네 번째 세계문화유산 퇴출 사례가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바로 경기 김포시 '장릉'이 그 주인공입니다.

"조선왕릉 40기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문화재이자, 전 세계인이 지켜가야 할 유네스코 세계유산입니다. 조선왕릉이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이유는 단순히 매장지뿐 아니라 풍수지리 원리를 직접 적용해 주변에 있는 자연환경까지 아울러 전체가 하나의 능을 이루는 독특한 구성 방식으로 조성됐기 때문입니다. 아파트 건설로 인한 경관 차폐는 단순히 미관상 보기 좋지 않은 수준이 아니라,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본질을 없앤다는 것입니다."(초록태릉을지키는시민들)

장릉이 세계유산 퇴출 위기에 처한 것은 경관을 가린 아파트 때문입니다. 장릉 앞에 문화재 보호 규정에 벗어난 채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가 지어져 논란이 생긴 것인데요. 왜 준공을 반년가량 남긴 이제서야 이런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일까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김포 장릉의 세계유산 등재 해제를 촉구한다'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이 청원 게시글 작성자는 "김포 장릉의 관리자들과 수많은 관람객이 단 한 번도 아파트 공사 현장을 전혀 본 적이 없을까. 문화재청의 매너리즘이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보존하고 유산의 확인, 보호, 보존, 공개 등 필요한 적절한 행정적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또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 행정으로 우리의 문화유산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애초에 고층 아파트가 지어지는 것을 확인했을 때 공사를 중단시켰다면 손해도 적었을 텐데. 고스란히 피해는 우리 문화재인 장릉과 함께 아파트 입주민들이 입게 됐죠.

논란이 된 것은 장릉뿐만이 아닙니다. 이번 장릉 아파트 사태를 계기로 정부가 주택 공급 계획을 발표한 태릉골프장(CC) 부지 개발도 덩달아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태릉CC 부지 내에 있는 태·강릉 때문이죠. 태릉과 강릉도 세계문화유산에 포함된 조선왕릉인데요. 정부 계획대로라면 태릉과 강릉 앞 100~700m 범위에 6800가구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죠. 이를 놓고 시민들과 환경단체 등은 장릉 아파트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많은 주택이 건설돼 우리의 생활이 윤택해지는 것도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세계가 인정한 우리 문화유산을 잃어가면서까지 개발을 하는 것은 다른 문제가 아닐까요. 문화재청도, 국토교통부도 이런 부분을 면밀히 검토해 다시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 행정이 재발해선 안 돼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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