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상담소] 만남에서 슬픔까지

입력 2021-08-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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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우 한국정신건강사회복지사협회 회장·지역사회전환시설 우리마을 시설장

며칠 전 해 질 무렵 동네를 산책하는 길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능소화를 보았다. 잠시 바라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왜 나에게 눈물이 발동된 것일까. 지금 고향 집 마당에도 피어 있을 능소화, 그리고 오래전 그것을 심었을 아버지가 연동됐다. 연로한 아버지에 대한 연민, 그리고 지금 내 삶의 이런저런 상황을 관조하면서 걷는 발걸음에 애달픈 조각들이 밟힌 것이었다.

어느 철학자는 ‘인간은 그 어떤 특별한 이유 없이 세계에 내던져졌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던져진 이후 인간은 수없이 많은 만남을 겪는다. 노사연이 ‘만남은 우연이 아니고 바람’이라 하였듯이, 우리 삶은 우연과 바람이 만들어낸 만남 그 자체다. 그리고 기쁨과 즐거움, 분노를 서로 만나고 사랑하는 과정에서 주고받는다. 또한 만남의 끝, 이별의 국면에서는 비로소 슬픔을 맞이하게 된다. ‘기억이란 사랑보다 더 슬프다’라고 이문세가 노래했다. 사랑할 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것을, 지나간 기억들이 비로소 슬픔으로 다시 불러온다.

누군가를 상담하는 일이 그 사람에 대한 연민으로 시작된다면 성공적이다. 그러나 그 사람에 대한 연민을 담지 못하면 피상적인 상담으로 끝난다. 그러면 상담받은 이가 상담가로부터 진정한 위로를 받지 못했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다만 상담가는 연민에 너무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상담가로서 자기중심을 지켜야 감정에 쏠린 내담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엔 나를 떨어져 관조할 수 있을 때, 홀로 남겨진 나를 만날 수 있다. 만남과의 이별 뒤에 남은 나의 모습은 애달프다. 그 애달픔은 나에 대한 연민이 전제돼야 느낄 수 있는 것, 슬픔이 그런 것 같다.

만남과 만남을 오가는 연민들이 때로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때로는 분노로 시간을 함께 버무린다. 그리고 무르익는다. ‘시간은 모든 것을 태어나게 하였다, 그러나 언젠가 풀려버릴 태엽’이라고 김창완이 노래한다. 나의 태엽이 풀리면 나는 멈춰서야 한다. 어쩌면 인생의 결과는 혼자 남는 것이고, 슬픈 것인지 모른다.

오늘은, ‘문어의 꿈’이라는 노래를 찾아 듣고 종일 그 멜로디를 입가에 담고 다녔다. 중독성 있는 노래다. 가사는 우울함이 배어 있지만, 멜로디는 즐겁고 흥겹다. 중독되는 이유는 그것이 좋고, 즐겁기 때문이다. 정녕 삶이 슬픈 것일지라도, ‘만남’의 중독이 있기에 웃을 수 있고 흥겨울 수 있는 것 아닐까. 황정우 지역사회전환시설 우리마을 시설장·한국정신건강사회복지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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