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세상] 금강산의 금순 동무는 잘 있겠지?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입력 2021-02-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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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김대중 정부 시절 금강산 관광의 문이 열렸다.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 어린 시절 음악시간에 노래만 불러대며 신비감을 더해갔던 그 금강산을 드디어 가 볼 수 있게 되었다. 운이 좋게도 당시 다니던 회사에서 직원 연수를 금강산에서 하기로 하였고, 나는 선발대 자격으로 몇몇과 함께 먼저 금강산을 가게 됐다. 역시나 겨울의 금강산은 명불허전이었다. 숨을 헐떡이며 정상에 올랐을 때 우릴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산을 관리 감독하던 여성지도원 동무였다. 이제 갓 이십대 중반이나 되었을까? 삭풍과 추위에 그녀의 손은 국민학교 때 가난하게 살던 여자 급우의 동상 걸린 손처럼 부르트고 갈라져 있었다.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금새 친해졌고,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금순이라고 수줍게 알려줬다. 괜한 측은지심이었을까? 나도 모르게 그만 김금순 동무와 약속을 하고 말았다. 2주 후에 다시 이곳에 올 계획인데 그때 동동구리무(로션)를 선물로 가져오겠다고 말이다. 금순은 활짝 웃어 주긴 했지만, 철없는 남쪽 아재의 실없는 농담 정도로 생각했었던 거 같다.

갑자기 휘몰아친 폭풍으로 패러글라이딩을 하던 대한민국의 재벌 딸이 북한 땅으로 넘어간다. 북한에 불시착한 재벌 상속녀 윤세리(손혜진)와 그녀를 숨기고 지키다 사랑하게 되는 인민군 장교 리정혁(현빈)의 우여곡절 러브스토리를 그린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은 작년 아시아 넷플릭스에서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리정혁 동무와 윤세리 재벌녀의 로맨스가 손예진과 현빈의 실제 열애로 이어져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물론 드라마를 보면서 ‘아 저건 말도 안 돼, 현실성이 너무 없어’ 하는 부분이 일만오천 개(?)가 있었지만, 그마저도 너그럽게 이해해 줄 다른 극적 요소들이 차고 넘쳤다. 예전 같았으면 국가보안법의 이적·찬양·고무를 의심케 하는 장면이 숱하게 나오곤 했지만,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남북관계의 정치적 난제들을 걷어내고 그냥 판타지로만 본다면 당신도 틀림없이 기가 막힌 남북 청춘의 슬픈 로맨스에 목이 메게 될 것이다.

16부작을 순삭 시청하면서 잊고 살았던 금강산의 김금순 동무가 생각이 났다. 아마 지금쯤은 세월이 흘러 결혼도 하고 30대 여성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 금강산에 가서 남쪽의 비싼 화장품을 건네줬냐고? 물론이다. 주위 눈치를 살피며 고마워하던 금순 동무의 얼굴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아내에게는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다시 금강산이 열리면 정상에 올라 금순 동무 안부부터 물어봐야겠다.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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