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형 적합업종 이대론 안된다(상-1) ] 1호 '서점업',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나

입력 2020-11-11 05:01 수정 2020-11-12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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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신림역 앞 영풍문고 신림포도몰점에서 시민들이 책을 구매하거나 쇼핑을 하며 상점을 둘러보고 있다. 이곳은 중소벤처기업부가 생계형적합업종 1호인 서점업에서 ‘학습참고서 판매중단 권고’를 지키지 않는 첫 번째 장소로 적발된 곳이다. 사진 왼쪽은 영풍문고에 입정한 스터디북, 오른쪽은 영풍문고 내부.(사진=이재훈 기자 yes@)  (출처=중기부, 신정훈 의원실)
▲지난달 24일 신림역 앞 영풍문고 신림포도몰점에서 시민들이 책을 구매하거나 쇼핑을 하며 상점을 둘러보고 있다. 이곳은 중소벤처기업부가 생계형적합업종 1호인 서점업에서 ‘학습참고서 판매중단 권고’를 지키지 않는 첫 번째 장소로 적발된 곳이다. 사진 왼쪽은 영풍문고에 입정한 스터디북, 오른쪽은 영풍문고 내부.(사진=이재훈 기자 yes@) (출처=중기부, 신정훈 의원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소상공인 간 ‘상생’이 길을 잃고 있다. 골리앗과 다윗 싸움에서 ‘을’인 소상공인은 법적 보호 테두리 안에서도 철저히 대기업에 짓밟힌다. 동반성장과 상생을 외치던 ‘갑’은 중소기업 몰래 원천기술을 탈취하고, 편법으로 교묘히 법망을 피해 부를 축적한다. 정부와 정치권이 대기업과 중소상공인 상생을 위해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까지 만들어 지키려 했던 상생은 구색을 갖추듯 짜인 애매한 법률 조문과 대기업의 책임 회피식 ‘상생협약’에 밀려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영풍문고 vs 중기부, ‘생계형적합업종 1호 서점업’ 두고 정면충돌=10월 24일 오후 신림역 앞에 있는 영풍문고 신림포도몰점. 책을 사거나 참고서, 다양한 서적을 사려는 시민들로 북적인다. 건물 한 층을 영풍문고가 다 사용하고, 매장 안에는 식음료 프랜차이즈 업체가 음료를 팔고 있다.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등 대기업 대형서점은 책 외에도 다양한 생필품 등을 판매하는 등 복합쇼핑몰 형태로 운영한다. 형형색색 조명과 인테리어가 고객 시선을 잡아끈다. 동네 책방이나 참고서만을 파는 지역 서점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한쪽에는 참고서 판매점이 눈에 들어온다. ‘스터디존’이라는 간판을 내건 이곳은 학습참고서만 취급하는 전문매장이다. 언뜻 보면 영풍문고가 내부에 ‘초중고 학습지 전문점’을 따로 인테리어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곳은 ‘서점업 생계형적합업종’ 지정에 따른 초·중·고 학습참고서 판매 금지 권고를 위반해 행정 처분을 받은 곳이다. 이 같은 처분은 생계형적합업종 1호인 서점업이 지정된 지 1년도 안 된 시점에서 나온 첫 사례다. 중기부는 이곳이 생계형적합업종 권고 사항을 위반했다고 봤다. 앞서 동반성장위원회는 서점업종이 지난해 10월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이전부터 학습참고서를 판매하지 않은 대형서점은 기존에 판매한 기간을 더해 18개월간 참고서를 판매하지 않도록 권고했는데, 영풍문고 신림포도몰점은 내부에 별도 점포를 입점시켜 학습참고서를 지속해서 판 것이다.

‘스터디북’이라는 상호로 돼 있는 이 곳은 2019년 6월부터 학습참고서를 팔았고, 권고대로라면 올해 11월 30일까지 학습지를 판매해선 안 된다. 반면 영풍문고와 해당 매장 측은 중기부 권고가 불합리하다는 견해다. 스터디북이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소매점이고, 단지 영풍문고 내에 점포만 가진 ‘숍앤숍’ 개념이라는 이유에서다.

영풍문고와 스터디북 관계자는 “권고사항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시에 공표했지만 다소 억울한 면이 있다”며 “소상공인과 대기업이 윈윈하는 전략일 뿐 생계형적합업종 권고 위반 조치는 과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보호받아야 할 ‘서점업’, ‘꼼수 영업’에 무너졌다=생계형적합업종 1호인 서점업에서 발생한 ‘권고위반’에 대해 중기부 관계자는 “터질 게 터졌다”고 말했다. 생계형적합업종이 지정됐을 때부터 빈약한 특별법 규제 조항으로 ‘꼼수 영업’이 횡행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기 때문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영풍문고와 해당 업체 모두 권고사항을 위반한 것이 분명하다”며 “법이 미약해 ‘권고를 위반했다’는 행정 처분만 내린 게 유감일 뿐”이라고 말했다.

중기부 측이 이런 입장을 나타낸 것은 ‘생계형적합업종 특볍법’의 한계로 지적된다. 법에 따르면 대기업 대형서점은 1년에 신규 점포를 한 곳만 낼 수 있고, 3년간 참고서를 판매해선 안 된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이행강제금과 벌금을 물게 되지만 제도 시행 이전에 참고서를 팔았다면 그대로 판매할 수 있다. 또한, 제도 시행 이전 동반위와 협상을 통해 일시적으로 판매중단 조치를 받았어도 18개월만 지나면 얼마든지 판매할 수 있다. 영풍문고 신림포도몰점처럼 18개월 이내에 참고서를 팔아도 ‘권고’ 조치나 고시에 권고 위반 내용을 ‘공표’하는 시정 명령이 최대한의 행정처분이다. 감독기관인 중기부는 고시로 ‘이 업체가 권고를 지키지 않았다’는 일종의 망신주기 밖에 할 수 없다.

‘서점업은 시작일 뿐’이라는 우려도 있다. 서점업 이후 추가로 지정된 자동판매기·LPG·두부 소매업 등 8개 생계형 적합업종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속출하고 있고, 향후 지정될 다수의 업종에서도 서점업과 같은 악순환이 얼마든지 되풀이될 수 있다.

서점업의 생계형적합업종 1호 지정에 공을 들였던 한국서점조합연합회 측은 “서점업이 생계형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며 1년간 영풍문고 등 대기업 프랜차이즈 서점들의 위반행위와 의심사례가 발생했다”며 “서점업뿐 아니라 다양한 업종으로 생계형적합업종이 지정될 것을 고려해 법제도 정비 및 강화, 관리 감독을 보다 철저히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생계형적합업종 제도는 소상공인이 생계를 영위하기에 적합한 업종을 지정해 보호·육성하기 위한 특별법이다. 생계형적합업종을 신청해도 대·중소기업과 상생협약을 체결하면 신청이 철회된다. 생계형적합업종 1호인 서점업의 경우 연 매출 1000억 원이 넘는 대형 서점업의 경우 5년간 신규 점포를 열지 못한다. 다만 업계 반발을 감안해 예외규정으로 1년에 한곳 정도를 신규 출점을 허용했다. 신규 출점한 매장 역시 36개월(3년) 동안은 학습 참고서를 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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