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보고서 제출 기한 연기” 상장사 요구 봇물

입력 2020-03-05 15:40 수정 2020-03-0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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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실사 어렵고 보고서 질적 저하 우려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사업보고서 제출 기한 연기를 신청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금융당국이 코로나19 관련 사유로 제출이 지연될 경우 행정제재를 면제해준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향후 중국이나 대구ㆍ경북 지역에 주요 사업장이 있거나 방역조치 등으로 인해 사무공간이 폐쇄되는 기업들의 연기 신청이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일각에선 금융당국이 제출 지연 허용 대상 기업을 한정하지 말고 모든 상장사를 대상으로 일괄적으로 사업보고서 제출기한을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자료 준비 미흡이나 현장감사 불충분으로 보고서 품질 저하가 우려된다는 논리다. 다만 금융당국은 “투자자의 정보이용 및 향후 일정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상장사 5곳 제출 지연 신청… 3월 말 면제 여부 확정= 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날까지 사업보고서 제출 지연 제재 면제를 신청했다고 알린 기업은 코스닥 상장사 4곳(KH바텍, 오가닉티코스메틱, 화신테크, 골든센츄리), 코넥스 상장사 1곳(에스에이티이엔지)이다. 비상장사도 1곳이 신청했다. 코스닥 상장사 스타모빌리티의 경우 사업장 방문자가 의심환자로 분류돼 제출 지연을 신청했다가 음성 판정을 받자 관련 공시를 철회했다.

이들 기업 대부분은 국내에 상장한 중국기업이거나, 중국 및 경북 지역에 주요 사업장을 둔 업체들이다.

오가닉티코스메틱과 골든센츄리는 국내 증시에 상장한 중국 기업이다. KH바텍은 국내 1~3공장 전체가 경북 구미에 위치해 있고, 지난해까지 중국 톈진과 후이저우에서도 공장을 운영해왔다. 화신테크의 경우엔 코로나19 밀접 접촉자 발생으로 인해 지난달 말부터 사업장이 휴업에 들어갔다.

향후 신청 기업은 늘어날 가능성도 크다. 상장사협의회와 코스닥협회가 자체 설문조사한 결과 코스피 상장사 15개사, 코스닥시장에선 60개사가 정해진 시한까지 사업보고서를 제출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중국에 자회사를 두고 있는 한 상장사 관계자는 “감사인이 중국 현지 실사를 가길 꺼려한다”며 “특히 실사를 진행하더라도 양국에서 각각 2주씩 격리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국내 증시에 상장된 중국기업은 아마 모두 제출 지연을 신청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기업이 제출 기한 연장을 신청하면 금융감독원은 신청서 및 증빙자료를 검토해 증권선물위원회에 상정한다. 행정제재 면제 여부가 확정되는 시점은 3월 말이다. 이를 위해 기업은 제재 면제 신청서 및 감사인의 의견서를 필수적으로 내야 한다. 여기에 제재 면제 요건에 해당한다는 것을 증빙하기 위한 자료를 추가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제출 기한 일괄 연기 주장도… 금융당국 “사회적 비용 고려해야”= 다만 일부 상장사에선 제출 지연 신청 요건이 한정돼 있어 신중하게 대응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주요사업장(자회사 포함)이 중국 또는 국내 감염병 특별관리 지역에 있거나, 해당 지역에서 중요한 영업을 수행하고 있는 경우 △외부 감사가 코로나19 또는 코로나19 방역 등을 위한 각종 조치 영향으로 지연된 경우로 제재 면제 조항을 한정짓고 있다.

물론 ‘이에 준하는 경우로 불가피한 사유가 있을 때’라는 추가 조항을 달았기 때문에 명시적으로 그어진 제한 선은 없다. 그러나 사유 증빙 과정에서 추가적으로 들어가는 시간과 혹여나 생길지 모르는 행정제재 리스크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상장사 관계자는 “감사인이 한 기업만 담당하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일 처리가 업계 전반적으로 늦어지는 상황”이라며 “신청한다고 해도 증빙서류 제출 요구가 계속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빠듯하더라도 그대로 진행하자는 의견이 많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감사보고서 품질이 저하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통상 현장실사와 인터뷰로 이뤄지는 감사 과정이 이메일이나 전화로 축약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와 회계법인이 둘 다 재택근무를 하거나, 정상근무를 한다 해도 감사인의 회사 출입을 꺼려해 자료 제출이나 관련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다는 설명이다.

이를 우려해 한국감사인연합회도 최근 “전체 상장사의 감사보고서 법정 제출 기한을 연기해야 한다”는 취지의 성명을 냈다. 이들은 “정부 발표를 빌미로 감사 자료의 준비 미흡과 현장 감사의 불충분으로 인해 감사보고서의 품질이 저하돼 회계 투명성이 퇴보할까 우려된다”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전 상장사에 대해 제출 기한 요구에 대해서 선을 그었다. 보고서 제출에 뒤따르는 주주총회 등 일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코로나19에 따른 예외적인 상황에 따라 만든 조치이기 때문에 정교하게 조건을 설정하기 쉽지 않았다. 가급적이면 기업들이 이번 사태로 겪는 어려움을 수용하려는 입장”이라면서도 “전 상장사 제출이 연기되면 투자자의 정보 이용과 향후 일정 조정 등 감당해야 하는 사회적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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