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적 손해배상의 가장 유명한 사례로 1992년 미국에서 발생한 ‘맥도날드 커피 사건’이 있다. 주인공은 점포에서 커피의 뚜껑을 열다가 화상을 입은 79세의 스텔라 라이벡 할머니. 당시 재판부는 “맥도날드는 할머니에게 총 64만 달러(약 7억6000만 원)의 손해배상을 해라”고 판결했다. 예전에도 여러 번 화상 사고가 있었음에도 제대로 된 시정조치가 없었을 뿐 아니라 일회용 컵에는 ‘매우 뜨거우니 주의하세요’라는 경고문구도 없었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치료비 배상 외에 유사한 사건의 ‘재발 방지’까지 고려한 조치다. 하나의 사건, 한때의 상처는 처리방식에 따라 장기적으로는 사회 전체에 약이 될 수 있다. 이후 전 세계 거의 모든 일회용 커피 컵에 ‘CAUTION-HOT BEVERAGE’라는 문구가 달렸다. 배상액이 무거우면 기업 입장에서는 사전에 주의하고 문제가 될 행위는 아예 하지 않는 게 훨씬 더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당위보다는 이익이 먼저다. 도덕을 현실적 유용성에 따라 나오게 하는 것이 고급 정책이다.
시대가 바뀌며 민법과 형법의 영역을 확연히 구분하는 한국에서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2011년 하도급법 개정으로 처음 도입됐지만, 그 적용은 지난 8년간 거의 없었다. 배상액이 적으면 소송의 실익이 적어 ‘고작 이 금액을 받으려고 이 고생을 하나’라는 생각에 쉽게 포기하게 되고, 살인 가습기 살균제의 사례에서 보듯 당사자가 아무리 강력한 의지가 있어도 ‘핵심 증거를 제시할 책임’이 피해자에게 있으면 다년간 전문 정보들을 축적해 온 회사를 이기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거나 아예 싸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몇 해 전, 폭스바겐 사태 당시 징벌적 손해배상이 도입된 미국에는 약 17조 원을 배상했지만, 한국에는 아무 배상 없이 사회공헌기금 100억 원과 100만 원짜리 쿠폰 지급으로 끝난 것에 공분을 산 바 있다. 이후 BMW 화재 사태가 잇따라 발생했다. 이는 1996년 미국에서 BMW 세단 출고 전에 발생한 문제 때문에 도색을 다시 했다는 이유로 아이라 고어 씨가 200만 달러, 차량 가격인 4만 달러의 약 50배 배상을 받은 사례와 비교가 됐다. 기업 위축, 이중 처벌 문제가 있다지만 뭔가 이상했다. 사회는 사건과 사고를 겪으며 진화한다. 급기야 정부와 정치권도 바빠졌다. 제조물 책임법에서 부랴부랴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했고, 개정안 또한 신속하게 나왔다. 최근엔 특허법, 환경보건법, 벤처기업 기술 탈취에 대해서도 도입 노력이 활발하다. 그러면 여기서 관전 포인트. 어떤 경우에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을 검토할 수 있을까?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
서구 선진국들의 다양한 판례들에서 직접 도출할 수 있다. 첫 번째, ‘불법행위의 억제’가 어렵거나 ‘손해배상을 하는 것이 더 이득’인 경우(영국식)다. 두 번째, 장래 ‘유사한 불법행위의 재발 방지’가 필요한 경우(미국식)이다. 세 번째는 약간의 주의도 기울이지 않아 손해가 발생한 ‘무배려적 과실행위’(캐나다식). 네 번째, 통상 손해의 3배로 제한되는 징벌적 손해배상의 범위나 유형을 한정하지 않고 폭넓게 인정하는 경우(호주식)다. 하지만 도입보다 중요한 건 실효성이다. 사안에 따라 적용 대상과 배상 규모, 인과 관계의 입증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