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인물사전] 185. 강신재(康信哉)

입력 2017-08-2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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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에 억눌린 여성의 욕망 그려내

강신재(康信哉·1924~2001)는 서울에서 개화한 의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전 가사과에 진학할 때만 해도 작가가 될 뜻은 없었다. 열아홉에 결혼한 후 자신이 소모되는 느낌이 두려워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49년에 ‘얼굴’, ‘정순이’가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문예’로 데뷔해 전후 여성 살롱의 대표 작가가 되었다. 창작집 ‘희화(戲畫)’(1958) ‘여정(旅程)’(1959), 장편 ‘파도’(1963) ‘숲에는 그대 향기’(1967) 등을 남겼다.

여성작가 1세대인 김명순, 김일엽, 나혜석은 ‘스캔들의 여왕’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채 선각자에게 주어진 세상의 질시(嫉視)를 견뎌야만 했다. 그러나 여성작가 2세대에 속하는 강신재는 가정생활과 일(창작) 모두에서 ‘무난한’ 삶을 이어갔다. 그녀는 국회의원과 서울대 법대 교수를 지낸 서임수와 연애 결혼해 평생을 해로하며 한국 상류계급의 명예를 누렸다. 문학성을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대중적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강신재는 구성미와 절제미가 뛰어난 단편으로 관심을 모았다. 특히 감각적인 문체는 ‘여류(女流)문학’에 대한 남성 중심적 평단의 관념에 부응한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강신재의 소설은 기실 ‘규범적 여성성’을 초과하는 악녀들이 내뿜는 열기에 지배당하고 있다. 그녀는 해방 이후 출현한 감각적이고 소비주의적인 도시문화 속에서 양공주, 미망인, 도시 여성들의 가부장적 규범을 초과하는 욕망을 그린다. 여성다움의 의장(儀裝) 이면에는 마녀이자 히스테리 환자로서의 여성성이 감추어져 있다.

강신재는 데뷔 초 한동안, 국가 재건의 문화적 흐름에 대한 여성들의 실감을 형상화했다. ‘악녀’의 도발성은 풍기문란과 풍속 정화라는 미명 하에 이루어진 전후 가부장제의 재편 작업에 대한 저항감을 암시한다.

여성들은 전시 하에서 생존 주체로서 역량을 키우고 서구 문화 속에서 자유를 경험했다. 그러나 남성들이 귀환하자 가정으로 복귀 명령과 함께 온갖 제재를 받게 된다. 중장년기의 강신재는 대중성이 강한 장편을 연재하며 아름다운 대저택이 숨긴 추악하고 슬픈 비밀을 폭로하는 식으로 중산층 가족주의에 저항한다.

강신재는 이복남매의 불온한 사랑을 상큼하게 그린 ‘젊은 느티나무’의 작가로 알려져 왔다. 이로 인해 그녀가 장편 ‘임진강의 민들레’(1962), ‘오늘과 내일’(1966) 등에서 전쟁과 분단, 4·19로 이어지는 거대사를 조망하는 등 다채로운 작품을 창작해온 점은 간과되곤 한다. 강신재는 한국여류문학인회 회장, 대한민국예술원 정회원, 소설가협회 대표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고, 한국문협상, 여류문학상,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 3·1문화상을 수상했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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