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이 미래다] 의약품 소재로 각광받는 곤충…왕지네, 아토피에 ‘특효’

입력 2017-03-2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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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복용 때 부작용 적고 치료 효능 높은 ‘천연물질’로 각광

흔히 벌레라고 치부하던 곤충류가 새로운 의약품 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사람의 각종 질병을 고치는 성분이 잇따라 발견되면서부터다.

23일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혈전(혈관 속에서 피가 굳어진 덩어리) 및 심혈관 질환 치료제의 글로벌 시장은 2015년 기준 29조 원 규모로, 국내에서만 62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서구화된 식습관과 인구의 고령화에 따른 심혈관계 질환이 급격히 늘면서 2022년 시장 규모가 4조 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에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기존의 항혈전 치료제를 대체해 장기적 복용에도 부작용이 적고 치료적 효능이 높은 천연물질을 이용한 새로운 식·의약품 개발이 요구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 식용곤충인 흰점박이꽃무지 애벌레(일명 굼벵이)에서 분리한 물질이 혈전 치유와 혈액 순환 개선에 효과를 보였다. 굼벵이에서 분리한 물질인 ‘인돌 알카로이드’를 처리한 결과, 혈액을 응고하는 인자의 활성을 70%가량 억제하면서 혈전 생성량을 60~70%가량 줄이는 효과가 나타났다. 인돌 알카로이드는 혈액 응고를 일으키는 당단백질인 ‘피브린’의 응집을 70% 저해하고, 혈소판 응집을 60%가량 억제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진은 경동맥 혈전증(혈전에 의해 혈관이 막힌 질환)이 있는 쥐에 인돌 알카로이드를 투입한 결과, 혈전의 크기와 생성을 50% 억제하는 것을 확인했다.

폐 혈전증이 있는 쥐 실험에서는 혈액 응고 인자인 ‘콜라겐’과 혈관 수축 물질인 ‘에피네프린’에 의한 치사율을 70%가량 줄이는 데 효과가 있었다. 이에 농진청은 혈전 치유 효능이 있는 인돌 알카로이드의 특허를 출원했다.

김미애 농진청 곤충산업과 농업연구사는 “꽃벵이(굼벵이)가 식품공전에 등록돼 식품원료로 안전성이 입증된 데 이어 이번 연구로 혈전 치유 효능까지 밝혀졌다”며 “일반 식품은 물론 건강기능성 식품과 의약품으로까지 활용 가능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환경정화 곤충인 애기뿔소똥구리에서 분리한 ‘코프리신’은 염증성 장 질환에 대한 치유 효능이 발견됐다. 코프리신은 가축의 배설물 속에 사는 애기뿔소똥구리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분비하는 생체방어 물질로, 9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돼 있다.

연구팀은 만성장염이 있는 쥐에 코프리신을 투여한 결과 장출혈과 설사, 체중 감소, 과잉면역반응 등이 억제되는 것을 확인했다. 만성염증 시 나타나는 부종, 점막구조 파괴 등은 70% 이상 회복됐다.

통상 쥐는 장염이 발생한 후 15일이 지나면 염증반응 및 설사, 음식 섭취 감소로 체중이 30%가량 줄며 죽게 된다. 반면 코프리신을 투여한 쥐는 몸무게 감소 없이 모두 살아남았다.

만성장염의 경우 장의 길이가 짧아지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코프리신을 먹인 쥐는 장 길이가 90% 이상 회복됐다. 코프리신은 대장상피세포의 분열을 촉진하고, 이를 통해 생성된 건강한 상피세포들이 단단한 점막을 형성해 대장 속 병원성 물질들의 체내 침투를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 세계 염증성 장 질환 환자 수는 약 400만 명(2013년 기준) 이상으로 추정된다. 미국의 경우 약 160만 명(2011년)으로 알려져 있으며, 1인당 연간 의료비는 2만 달러 정도 소요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나라에는 약 10만 명의 염증성 장 질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2012년 기준, 위막성대장염 포함)되며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황재삼 농진청 곤충산업과 농업연구관은 “코프리신은 항균·항염 효과를 지녀 피부 친화성 화장품 제조에도 활용되고 있다”며 “곤충이 식품과 화장품을 넘어 이제 의약품에서도 활용되는 시대”라고 소개했다.

왕지네를 통해서는 아토피 치유에 효능이 있는 항생물질이 개발됐다. 연구진은 차세대 유전체 해독 기술을 이용해 왕지네에서 분리한 새로운 항생물질이 아토피 치유에 효능이 우수하다는 것을 동물 실험과 세포 실험을 통해 구명했다.

이번에 개발한 물질은 왕지네 등 곤충이 세균에 대항하기 위해 분비하는 항균 펩타이드이며 14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돼 있다. 왕지네의 학명을 따라 ‘스콜로펜드라신(scolopendrasin)Ⅰ’이라고 이름 지은 해당 물질은 쥐를 이용한 실험에서 아토피 피부염 치유에 효능이 탁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콜로펜드라신Ⅰ을 투여한 쥐는 기존 치료제를 투여한 쥐보다 약 15∼42% 더 큰 감소 효능을 보였다. 또 아토피성 피부염 지표물질들이 37∼82% 줄어들었다. 아토피가 발생하면 비만 세포에서 ‘히스타민’과 같은 염증 매개 물질이 분비되는데, 스콜로펜드라신Ⅰ의 농도에 따라 히스타민 분비가 36∼47%가량 억제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토피성 피부염 유병률은 꾸준히 늘어 약 10∼20%로 보고되고 있다. 전 세계 아토피성 피부염 시장은 2012년 기준 39억 달러로, 연평균 3.8% 성장 시 2022년 56억 달러 규모로 커질 전망이다.

이에 농진청에서 스콜로펜드라신Ⅰ 기술을 이전 받은 산업체는 의약품 개발 전 단계로 만든 화장품을 시장에 출시했다. 황 연구관은 “아토피 치유에 효능이 있는 스콜로펜드라신Ⅰ 물질이 화장품과 의약품 소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널리 활용될 수 있도록 상용화에 속도를 낼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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