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원자력협정 타결… 美비확산 원칙속 韓자율성·실익 확대

입력 2015-04-22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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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원자력협정이 4년 6개월여간의 협상 끝에 22일 타결됐다. 지난 1973년 발효된 현행 협정이 42년만에 새롭게 적용될 예정이다. 그동안 미국의 사전동의 규정 등에 따라 묶여 있던 우라늄 저농축과 파이로프로세싱(건식 재처리)을 통한 사용후 핵연료 재활용(재처리) 가능성의 문이 열렸다.

박노벽 외교부 한미원자력협정 개정협상 전담대사와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는 이날 오후 서울 세종로 외교부 청사에서 ‘대한민국 정부와 미합중국 정부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력협정’에 가서명했다.

신협정은 원전 연료의 안정적 공급과 사용후 핵연료 관리, 원전수출 등 3대 중점 추진분야와 원자력 연구개발 자율성 등의 측면에서 재건축 수준으로 전면 개정됐다.

우리 원전산업을 둘러싼 전방위적 파급 효과가 예상된다. 신협정은 한미간 원자력협력의 틀과 원칙을 규정한 전문과 21개 조항의 본문, 협정의 구체적 이행과 한미 고위급위원회 설치에 관한 각각의 합의의사록 등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협정의 핵심 쟁점이었던 핵연료(우라늄) 농축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이른바 ‘골드 스탠더드’가 포함되지 않았다.

기존 협정에는 농축에 관련한 구체적 명시는 없었지만, 특수핵물질을 재처리하거나 연료성분의 형태나 내용을 변형할 경우 미측으로부터 건건이 또는 5년마다 사전동의를 받아야 했다. 때문에 사용후 핵연료 연구·개발에 사실상 족쇄로 작용해왔다는 평가와 함께 미측의 일방적 통제방식에 따라 불평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골드 스탠더드’가 명시적으로 규정되지 않음으로써 상대적으로 우리 측의 자율적 활용 가능성이 확대됐다는 평가다. 사용후 핵연료 연구 등과 관련해 기존에 일일이 미측의 사전동의를 얻던 것을 협정 기한내 포괄적 장기동의 형태로 바꿔 자율성을 대폭 높인 것이다.

한미가 사용후핵연료 재활용을 위해 공동연구중인 파이로프로세싱(건식 재처리)과 관련, 우리가 보유한 현존 연구시설에서 미국산 사용후핵연료를 이용한 첫단계 연구(전해환원)를 자유롭게 수행할 수 있게 됐다.

전해환원 이후 전해정련, 전해제련 등 사용후 핵연료 재활용 실용화까지의 파이로프로세싱 후속 연구에 대해서도 한미가 공동연구(2011~2020년) 결과를 바탕으로 새로 설치키로 한 고위급위원회(수석대표 차관급)에서 협의·합의를 통해 추진하기로 했다.

사용후 핵연료 관리를 위한 핵심 기술분야인 저장, 수송, 처분 등 분야에서도 한미간 기술협력을 확대·강화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또 미국산 사용후핵연료를 한미 양국이 합의하는 제3국에 보내 상업적 위탁 재처리를 할 수 있는 길도 열어뒀다. 우리가 보유한 현존시설에서 미국산 사용후핵연료를 이용한 전해환원 연구는 물론, '조사후시험'도 허용된다. 조사후시험은 방사능 물질의 특성 등을 차폐된 시설내에서 확인하기 위한 시험이다.

원전연료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한미 고위급위원회에서 비확산성 등을 고려하고 한미간 합의를 통해 미국산 우라늄을 20% 미만으로 저농축 할 수 있는 통로(pathway)를 열어놨다. 미국의 원전연료의 안정적 공급 지원노력을 규정하고, 원전연료의 수급 불균형 상황시 상호 비상공급 지원도 협의키로 했다.

원전 수출증진 차원에서 한미 양국과 원자력 협정을 체결한 제3국에 대해서는 우리 원자력 수출업계가 미측의 동의를 받을 필요없이 미국산 핵물질이나 원자력 장비, 물품 등을 자유롭게 재이전할 수 있도록 했다.

한미간 원전관련 수출입 및 기술이전과 관련한 인허가를 신속하게 하도록 하고, 핵물질이나 장비, 부품, 과학기술 정보의 상호교환 교류를 활발히 해 원전수출 투자나 합작회사 설립 등을 촉진하도록 했다.

협정의 원활한 이행과 미래에 발생할 문제에 공동 대처하기 위해 차관급을 공동의장으로 하는 상설 고위급위원회를 신설, 매년 전략적 협의를 하기로 했다. 향후 파이로프로세싱이나 우라늄 저농축을 추진하는 것도 이 고위급위원회를 통해 이뤄진다.

그동안 전량 수입에 의존했던 암 진단용 방사성동위원소(몰리브덴-99)도 미국산 우라늄을 이용해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이를 수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이번 협정은 양국의 가서명에 이은 1~2개월후 정식서명, 미 의회의 비준과 우리 국회에 대한 보고 등 국내절차를 거쳐 기존 협정의 유효기간인 내년 3월 이전에 발효될 전망이다.

기존 41년이었던 협정의 유효기간도 원전환경의 급속한 변경 가능성 등을 감안해 20년으로 대폭 단축했다. 다만, 협정 만료 2년 전에 어느 한 쪽이 연장거부를 통보하지 않으면 1회에 한해 5년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앞서 협정 발효 17년째 되는 해에 양국이 협정의 유효성과 연장 필요성 등을 포괄적으로 검토, 협의하도록 했다. 별도로 일방 당사국이 1년 전에 사전 통보만 하면 협정을 어느 때나 종료시킬 수 있도록 했다.

양국은 지난 2010년 10월부터 1차 협상을 시작으로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을 벌여왔다. 우리 정부는 사용 후 핵연료 관리, 원전연료의 안정적 공급, 원전수출 증진 등을 3대 중점 목표로 정하고 협상을 벌여왔다. 특히 핵심 쟁점인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활용을 문제를 놓고 막판까지 줄다리기를 벌였다.

이번 협상과 관련해 원자력 안전 전문가인 장순흥 한동대 총장은 “명분 싸움에서 벗어나 실익을 추구해 매우 실리적인 결과물을 얻어냈다”며 “협상과정에서 강조했던 세 가지를 모두 성취했다”고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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